음악가인 오르페오가 노래를 부르면 인간은 물론 식물과 동물, 신까지 감동하고 만다. 어느 날 오르페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다. 슬픔에 빠진 그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아내 를 찾아나선다. 그리스 신화로 익히 알고 있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이야기다. 죽음도 불사한 이 절절한 사랑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408년 전 최초의 오페라가 탄생했다. 이탈리아 작곡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1567~1643)의 손을 통해서다.
고대 그리스의 문예부흥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음악과 극의 결합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몬테베르디는 오페라라는 장르를 탄생시키는 선구자가 됐다.
사실 '오르페오'(1607년)가 최초의 오페라는 아니다. 이에 앞서 역시 그리스 신화를 다룬 '다프네'(1597년)와 '에우리디체'(1600년)가 있으나 전자는 악보가 남아있지 않고 후자는 오페라가 갖춰야 할 요소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평가다. 결국 '오르페오'가 연주 가능한 가장 오래된 오페라인 셈이다.
음악사적으로 의미가 남다른 이 작품을 서울시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한다.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은 "70년 가까운 한국 오페라 역사에 '오르페오'가 빠져있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지난해부터 이 공연을 기획했다.
연출은 오페라와 뮤지컬 연출을 두루 섭렵한 김학민 경희대 연극영화학과 교수가 맡는다. 김학민 연출은 오랜 기간 공석이었던 국립오페라단 신임 예술감독으로 임명됐다. 첫 행보로 이 작품의 연출을 맡아 공연계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김학민 연출은 이번 공연의 콘셉트를 '길'로 잡았다. 죽은 아내를 찾아가는 길, 지상 낙원에서의 길 등 다른 시간과 공간을 잇는 길이 무대의 중심축을 이룬다.
바로크 음악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고음악 전문가인 정경영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현실적으로 공연이 불가능한 바로크 원전 악기 대신 현대 악기로 편성을 바꿨다. 대신 바로크 음악 연주법을 유지했다. 지휘를 맡은 양진모는 쳄발리스트 김희정과 함께 지휘뿐만 아니라 쳄발로도 연주한다.
주인공 '오르페오'로 캐스팅된 두 명의 성악가가 서로 다른 음역대라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이 작품은 각 배역의 음역이 테너나 바리톤,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 등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또 오페라에서 흔히 떠올리는 완성된 아리아가 없다. 즉흥으로 불러야 하는 부분도 상당해 성악가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간 누구도 쉽게 이 작품에 손을 대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르페오 역은 바리톤 한규원과 테너 김세일이 번갈아 맡는다. 또 에우리디체는 소프라노 정혜욱과 허진아가 노래한다. 오는 23~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3만~8만원. (02)399-1783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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