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노동일 칼럼] 사면, 대통령이 설명해야 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08.04 17:10

수정 2015.08.04 17:10

[노동일 칼럼] 사면, 대통령이 설명해야 한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클라호마주의 연방교도소를 찾았다. 교도소를 방문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 일종의 사건이었다. 마약범이 수감된 감방을 둘러본 오바마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철창을 배경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곳의 재소자들은 과거의 나와 비슷한 실수를 한 사람들이다.
나에게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젊은 시절 마약에 손을 댄 사실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마약범죄의 처벌 경감을 포함한 사법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도소 방문 며칠 앞서 46명의 마약사범에 대해 특별 감형 조치가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그 배경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글을 발표했다. 마약범에 대한 형량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 미국을 위해 더 좋다는 내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행사한 감형은 넓은 의미의 사면권(Pardon Power)의 일환이다. 마약사범에 대해 무조건 투옥과 과도한 처벌을 가하는 미국 사법시스템의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비폭력 마약범에게도 많은 경우 징역 20년 이상, 심지어 이번 감형대상자 14명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특히 마약 관련 투옥자의 70%가 흑인, 히스패닉일 만큼 인종적으로도 극도의 불공정한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은 점이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을 통해 국민 여론을 환기시킴으로써 대량투옥과 가혹한 처벌, 인종차별로 유지되는 미국 형사사법구조를 개혁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 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련 부처의 준비"를 언급한 마당이니 물밑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라는 명분을 보면서 재벌총수나 정치인 사면을 기대하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대통령의 광복절 사면 자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사면은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역대 모든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 마당에 박 대통령만 예외이기를 바랄 순 없다. 다만 이번에는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특히 중요한 것은 사면의 명분과 그를 통해 성취하고자 국정목표를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비친 바 있다. 국정운영 과정에서 생각이 왜 바뀌었는지를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한다. 특정인(들)에 대해 왜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 사면을 통한 국정운영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통합, 경제활성화 등의 뻔한 용어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생색 낼 때는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하고, 문제가 되면 법무부 장관의 건의였다고 미루는 수준이어선 더더욱 안된다.

흔히 사면권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란 말은 법치국가에서 어폐가 있다.
헌법에 의해 주어진 권한이며 따라서 국민에 의해 주어진 권한이다. 국민에 대한 설명은 의무인 것이다.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결단을 요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더더욱 결단의 내용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