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N포 세대'에 대한 의견을 묻자 청년들은 "이런 말을 만들어 유행시키는 게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근 인터넷에는 젊은 세대를 부르는 말로 'N포 세대'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떠돈다. 연애·결혼·출산 등 3가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3포 세대',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5가지를 포기한 '5포 세대'에 이어 꿈과 희망마저 포기했다는 '7포 세대'가 등장했다. 나아가 몇 가지가 됐든 결국 다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의 'N포 세대'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급급한 청춘… "N포라는 말 공허해"
8월 31일 기자가 만난 상당수 청년들은 당장의 생활에 최선을 다할 뿐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대학교 동창과 반지하 단칸방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는 최모씨(27)는 2년여 동안 준비하던 공무원 시험을 최근 접기로 했다. 그는 "먼 타지에 와서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이 미안해 최선을 다했다"며 "그러나 성적이 생각보다 오르지 않아 다른 직업을 찾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눈 앞에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지 선택과 포기가 따로 있나 싶다"며 "'N포'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뿐"이라고 전했다.
취업준비생 남모씨(28)는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대구로 내려 갔다. 취업 삼수 중인 그는 "한 달에 50만~60만원씩 나가는 월세와 생활비가 부담스러워 고향에서 준비하고 있다"며 "면접을 보러 서울에 가끔 올라가지만 집값이나 생활비를 봤을 때 대구에서 직장을 갖고 싶다"고 밝혔다. 남씨는 서울 생활을 포기한 셈이다.
취직을 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험회사에서 영업을 하다가 최근 중소기업에 취직한 하모씨(29)도 이후의 삶이 눈에 그려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평균 수입이 줄어도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싶어 이직했다"며 "현재 월급으로는 나 하나 먹고 살기 바쁘다"고 털어놨다.
하씨는 "이런 처지에 굳이 돈 더 써가며 연애나 결혼을 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서 "굳이 따지면 2포인데 내 상황에 맞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외동이기 때문에 부모님 부담이 덜해 학자금 대출은 없다"며 "학자금 대출까지 있는 주변 친구들은 상황이 더 막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기'한다고 낙인 찍는 사회
청춘들에게 'N포 세대'라는 유행어는 사회와 기성세대가 만든 또 다른 낙인이었다. 그들은 3·5·7…N개의 사회적 가치를 또 다른 부담으로 느끼고 있었다.
취업준비생 박모씨(30)는 "'N포 세대'라는 단어도 기성 세대가 만들거나 유행시킨 단어 같다"며 "우리는 원래 아무것도 없는 세대 아닌가"라고 현 세태를 꼬집었다. 그는 "N을 포기했다는 건 N을 아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N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걸 갖고 있던 적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체험형 인턴으로 모 기업에 근무 중인 대학생 장모씨(28)는 "난 포기한 적이 없다"며 "무언가를 가져본 기억도 없을 뿐"이라고 하소연 했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 취업에 목 매고 취업을 위해서 모든 걸 포기한다는 이야기 같아 씁쓸하다"고 전했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정헌주 연구교수는 "(청년들이 'N포 세대'라는 표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 들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들이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한 것이겠나"라며 "'N포 세대'라는 단어가 청년들을 '스스로 포기한 세대'라고 낙인 찍는 것"이라며 "진짜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은 드물다. 사회가 젊은이들을 밝게 비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한영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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