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올해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문재인 대표의 출마 여부가 관심을 끌 때였다. 방송 등에서 출마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밝혔다. 선천적인 리더십이 어떻든 문 대표는 당 대표로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머지않아 오늘날과 같은 리더십의 위기, 당의 위기가 올 것을 예상했다. 결국 대선주자로서도 회복하기 어려운 흠집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탁견이 있어서가 아니다. 새정치연합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야당의 전당대회-대표선출-대표사퇴-비상대책위-전당대회를 거치는 악순환은 일종의 전통처럼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 8년간 당 대표가 17번 바뀌었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의 와해나 박영선 원내대표가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한 최근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얼마 전 문 대표는 이른바 '셀프 디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른바 카리스마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문 대표는 '밀어붙이고, 딱 부러지게, 후련하게' 하지 못하는 점잖은 모습이다. 하지만 설사 '문신을 하고 욕설을 하는' 터프 가이라도 현재의 야당에는 통할 리 없다. 어떤 리더도 인정하지 않는 게 현재 야당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그 원인 분석도 여러 가지다. '친노 패권주의' '야당은 정치자영업자들의 모임' '기강과 원칙이 없는 콩가루 집안' 등이다.
최근 야당에 합류한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에선 마켓셰어가 떨어지면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고민하는데 야당은 지지율이 떨어져도 그런 고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야당의 핵심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고민하지 않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새누리당이 싫어서 결국 우리를 찍을 수밖에 없는 국민들이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질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인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값을 지불하듯 여당이 싫은 국민들은 '정치적 인질'처럼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오늘 야당의 혁신안이 중앙위원회 표결에 부쳐진다. 혁신안이 무산되면 재신임을 연계한 문 대표는 그만둘 것이다. 설사 혁신안이 통과되어도 이른바 비주류는 승복하지 않을 게 뻔하다. 이미 혁신안이 실패했다고 공언한 안철수 의원 등이 반길 리 만무하다. 이른바 천정배 신당도, 박준영 신당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으로는 안 된다는 호남민심을 거론하지만, 호남을 볼모로 한 또 하나의 인질정치나 다름 없다. 문제는 신당조차 강력한 흡인력도 없고, 새로운 돌풍을 만들 능력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차라리 확실한 야당의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한다면 희망을 걸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이다. 문 대표는 얼마 전 "천정배 의원을 끌어안지 못한 것은 실수였다"는 발언을 했다. 실수였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당내의 인사들뿐 아니라 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등 외부의 사람들과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은 어떻든 선거를 앞두고 다시 뭉칠 것으로 생각한다면 안이한 대응이다. 사분오열된 상태의 무기력한 야당은 야당에만 문제가 아니다. 반사이익을 얻는 여당도 긴장할 필요가 없는 정치 무풍지대를 맞는다. 일본처럼 정치가 함께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이 독주하는 아베의 경우를 보면 무력화된 야당이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목도할 수 있다. 국민이 야당을 걱정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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