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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국사교과서, 다양한 시각 함께 기술하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0.13 17:06

수정 2015.10.13 17:06

[노동일 칼럼] 국사교과서, 다양한 시각 함께 기술하자

2004년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 이전' 결정에서 이른바 '관습헌법'을 토대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위헌임을 선언했다. 학자들이 지적하듯 논리적 허점이 많은 판결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다수 재판관의 '구국의 결단'이 배경인지 모르겠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만장일치 결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전효숙 재판관의 반대 의견은 소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수도가 서울이다'라는 사실에서 '수도는 서울이어야 한다'는 규범을 이끌어낼 수 없고, 더욱이 우리와 같은 성문헌법 국가에서 그것이 '헌법'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헌재 판례는 대개 의견이 갈린다. 소수 의견이 다수의 결론을 부인할 수는 없어도 사안의 전체적인 파악에 도움을 준다. 학생들에게 늘 다수 의견과 반대 의견을 함께 보도록 독려하는 이유다. 균형감, 논리력, 비판력을 기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국사 국정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좌편향'된 중·고교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다. 야당은 '유신시대'로의 회귀라며 '총력 저지'를 벼른다.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진영논리에 따라 편싸움에 가세한다. 국사교과서를 둘러싼 여론을 정확히 계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체적인 흐름은 있다. 현행 교과서가 편향적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국정화가 대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당이 국정교과서 대신 '올바른 교과서'로 부르고, 야당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면서도 논의의 여지를 두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는 국사교과서를 헌재 결정문처럼 집필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과 의견이 있음을 기술하도록 집필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좌우 진영이 대립하는 쟁점은 근현대사에 집중되어 있다. 대한민국에는 가혹한 비판을 가하면서 북한 정권은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게 현행 교과서의 좌편향성을 지적하는 의견이다.

어설픈 민중사관적 관점에서 우리나라를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득세한 나라'로만 보는 것은 분명 편향적이다. 오점과 함께 성취도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대사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우리의 성공사례를 외면하는 것이나 북한의 가혹한 인권침해 사실을 도외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렇다고 국정교과서에서 '아, 대한민국' 식의 논지를 펼치는 것 역시 개방화, 다양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다.

교과서에 다양한 시각을 함께 기술해 주는 것은 그런 점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성취와 문제점을 동시에 기록하자. 북한에 대한 기술도 마찬가지다. 긍정적·부정적 평가를 함께 기술해 어린 학생들이 역사의 다면성과 복잡성을 알 수 있게 해주자. 여러 의견을 접한 후 스스로 판단하게 함으로써 균형감, 논리력, 비판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1992년 헌재는 (국어) 국정교과서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위헌은 아니라고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결론과는 관계없이 국사교과서 문제도 지나치듯 언급했다. "예컨대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마치 오늘의 논란을 예견한 듯하다. 우편향도, 좌편향도 문제가 있다면 '구국의 결단'이 아닌 균형점을 찾는 게 해법이다.
식상한 이념 대결 대신 구체적인 쟁점 부분에서 다양한 의견을 어떻게 기술할지 논의해 보기를 제안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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