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끝)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일정 수준 성장한 후 상장하거나 매각해 투자회수
할리우드에 가면 각자 시나리오가 있듯이 실리콘밸리에 있으면 누구나 아이디어 하나씩 있죠. 단순히 돈 번다는 것보다 사회의 문제점 발견해 비즈니스로 만들어 가는 거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일정 수준 성장한 후 상장하거나 매각해 투자회수
할리우드에 가면 각자 시나리오가 있듯이 실리콘밸리에 있으면 누구나 아이디어 하나씩 있죠. 단순히 돈 번다는 것보다 사회의 문제점 발견해 비즈니스로 만들어 가는 거죠.
【 샌프란시스코·프리몬트(미국)=조은효 기자】 사람들은 그가 회사를 매각해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33살의 성공은 어떤 것일까.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의 한 카페. 청바지에 티셔츠. 보풀이 일어난 목도리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과는 무관한 듯 보였다. "기업가정신을 가르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명쾌한 답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다만,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가치'를 창출해 키워나가는 게 기업가정신 아닐까요. 그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전 세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정말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네요."
카페에선 그와 안면이 있는 다른 아시아계 창업가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전수빈씨(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최근 애드허스키라는 회사를 매출규모 1조5000억원 규모의 고대디라는 곳에 매각했다. 회사를 차린 건 3년 전이었다. 스탠퍼드대학원에서 만난 선배와 뜻이 맞았다. 최근까지 회사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였고, 지금은 회사를 사들인 고대디의 팀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 업계에서 상당히 빨리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소위 스타트업계 용어로 투자회수(Exit)를 한 경우다. 실리콘밸리에선 창업초기기업이 일정 수준 성장해서 상장(IPO)·매각하거나 대규모 투자를 받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단계를 '엑싯'이라고 한다. 전씨는 "회사를 매각한 게 지금 상황에서는 맞다고 생각했고, 처음 회사를 세울 때 염두에 뒀던 원하는 지점까지는 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판 회사는 지역의 중소기업, 식당, 점포들이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광고·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기술(IT) 접목 광고회사였다. 페이스북에 광고를 띄운다는 점, 또 빅데이터를 활용해 타깃이 되는 고객층을 계속 좁혀나간다는 게 서비스의 핵심이다.
"지난 3년간 휴가를 갔던 적은 없었어요. 주말에도 일했죠. 일에 완전히 미쳐 있었어요." 삶과 일의 경계가 사라졌던 시기를 보냈다. 16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199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웹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집 지하실에 사무실을 차렸어요." 아르바이트를 생각할 나이에 회사를 차렸다는 게 여느 10대들과 달랐다면 다른 점이었다. 부모님 모두 사업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캐나다 공무원이고, 어머니는 대학교수를 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회사를 차리게 된 이유는 같았다. "페이스북이나 여러 인터넷 서비스들을 보면서 나도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뛰어들었어요."
최근까지 니콜라스 제임스(36·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의 별명은 '뱅크 오브 닉(Bank of Nick)'이었다. 실리콘밸리 끝자락 프리몬트에 위치한 '무료 기숙형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교' 코딩하우스(Coding House)의 대표다. 지난 2013년 문을 연 코딩하우스는 지원자들을 받아 3개월간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서 먹고 자며 컴퓨터 언어인 코딩을 배우게 한다. 주방에선 전담 요리사가 학생들의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액 무료이기 때문에 뱅크오브 닉이란 애칭이 붙었다. 단, 취업하면 첫해 연봉의 18%를 이 학교에 후불제로 내게 된다. "대부분 취업에 성공하기 때문에 수익엔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는 학교가 싫어 빨리 끝내고 싶어 15살에 대학에 갔다. 교양수업을 더 들어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는 말에 그대로 교문을 박차고 나온 그는 분명 괴짜다.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선 아버지, 할아버지, 어머니의 희생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대학교육은 비싼 학비를 낼 만큼의 가치는 없었어요." 그리곤 18살에 회사를 차렸다. "취직해서 시간당 11달러(약 1만2000원)를 받고 일했는데 회사는 시간당 160달러(약 18만원)에 일감을 받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회사를 차렸죠."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감한 생각에 회사를 차린 건 전수빈씨와 같았다. 12년간 그렇게 차린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다가 4년 전 매각했다. 그때 나이 불과 32살이었다.
4년여 만에 다시 차린 회사가 코딩하우스. 현재 프리몬트 지역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두 곳 모두 1층은 강의실, 2층은 학생들이 묵을 침실만 있을 뿐 별도의 최고경영자(CEO) 사무실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기업가란 일은 남들보다 2배로 하고 돈은 받을 돈의 절반밖에 못 받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한 가지 덧붙였다 "회사는 다른 곳에 팔 수도 있고, 인수당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우리는 언제나 홈런에 베팅한다는 거예요."
샌프란시스코는 분명 스타트업의 천국이다. 스탠퍼드대학의 실용주의적 학풍과 과거 전통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만들어낸 기업문화가 기반이다.
스탠퍼드대 출신의 윌 리(한국명 이원홍·32). 그는 최근 1년 새 8곳으로부터 총 3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그의 작은 사무실엔 10여명의 또래 직원들이 공간을 메웠다. 2년 전 결혼자금을 모두 쏟아 회사를 차렸다. "당시 통장에 남은 돈은 1만8000원이었어요." 그렇게 세운 벌로컬(Verlocal)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재능과 장기를 사고 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도자기 수업, 초밥 만드는 법, 암벽등반하는 법, 사진 찍는 법,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등의 강좌가 등록돼 있다. 아무도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지식과 재능이 화려하게 재탄생한다. 무형의 지식·재능 분야에서도 공유경제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예이다. "스탠퍼드에서 친구들이 만나면 스타트업 얘기만 했죠. 할리우드에 가면 각자 시나리오가 있다고 하듯이 실리콘밸리에 있으면 누구나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하나씩은 있죠. 단순히 돈을 번다는 것 보다는 사회의 어떤 문제점을 발견해서 기술, 비즈니스로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이에요. 빨리 성공하는 방법은 남이 잘하는 걸 카피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면 혁신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32살의 젊은 사업가는 "한국에서는 오너 중심으로 대대손손 기업을 대물림하는 문화가 있지만 그 성공은 결국 사회에서 주는 기회를 활용한 것이기 때문에 회사 존재 그 자체는 처음부터 퍼블릭(공공), 대중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현재는 샌프란시스코,뉴욕, 시애틀 등 미국 내 6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수년 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게 그의 목표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중 실제 투자를 받는 기업은 채 1%도 되지 않는다. 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시장 트렌드의 교체주기가 짧아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 최근 트위터는 전체 인원의 8%를 감원했다. "실리콘밸리는 꿈꾸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자 냉혹한 생존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곳입니다."
ehcho@fnnews.com fn·한국언론진흥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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