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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안철수 신당이 '메기'가 되려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22 17:18

수정 2015.12.22 17:18

[노동일 칼럼] 안철수 신당이 '메기'가 되려면

그동안 나는 안철수 의원에 비판적이었다. 안 의원은 정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큰 이유였다. 급조된 여론을 타고 정치권에 무혈입성한 것도 마뜩지 않았다. 본업으로 돌아가는 게 본인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판단은 여전하다. 하지만 부질없는 얘기가 되었다.
안 의원이 신당 창당을 공언한 마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안철수의 생각 대신 나의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한국 정치판을 바꾸라는 고언으로 말이다. 안철수 신당이 우리 정치권을 흔들어 깨우는 한 마리 메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위기의 근본에 무능하며 무사안일한 정치가 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속된 말로 아무리 '깽판'을 쳐도 여야 공천만 받으면 당선에 지장이 없는 구도는 정상이 아니다. 철저한 지역구도 탓이다. 여야가 상대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대하는 것도 비정상이다. 반대하고 저주하고 비난하는 게 거의 유일한 정치적 대안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그게 당선에 더 도움이 되는 적대적 공생관계 때문이다. 사회 모든 부문이 위기의식에 잠을 설치지만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집단이 정치권이다. 기왕 시작한 김에 안철수 신당이 안일한 우리 정치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결실을 거뒀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안철수 신당이 끝까지 가는 것이다. 맹목적인 야권 지지자 중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야권연대를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많이 훼손된 안 의원의 정치적 유용성은 결국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안 의원의 탈당 후 야당만 아니라 새누리당 지지율도 동반하락한 사실은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정치세력 중 하나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이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중도층으로 분류되는 정치적 세력의 욕구가 존재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분석이 아니다. 야권연대를 하는 순간 이들은 야당보다 새누리당 지지로 다시 돌아설 가능성이 훨씬 크다.

호남 지역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현재까지 특히 호남에서는 호남 정치를 들고 나온 천정배 의원보다 안철수 신당에 더 많은 기대가 쏠리고 있다. 야당을 탈당한 호남(출신) 의원들도 안 의원과 함께하려는 듯하다. 안 의원도 호남지역 신당 추진 세력과는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비쳤다. 당장 고무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양날의 칼이다. 자칫하면 이른바 '호남 자민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섭단체, 국고보조금 등이 눈앞에 어른거리더라도 정체성 확립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솔직히 안 의원이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은 실망스럽다. 우리 정치판을 바꾸는 중대한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빨리 배우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안 의원 자신의 말에서 기대를 찾고 싶다. 지금은 여야 어느 쪽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생각할 때가 아니다. 여야가 양 극단에서 대치하며 아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선거에서는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끝내는 게 가장 시급하다.
안철수 신당은 지역과 이념, 계층에서 극단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제3당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도 균열을 가져오고, 보수도 진보도 제대로 경쟁하는 구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런 고언을 넘어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고백할 용의가 있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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