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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정치 막장 드라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2.02 16:47

수정 2016.02.02 16:47

[노동일 칼럼] 정치 막장 드라마

TV 막장 드라마 제재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 대상이 된 '압구정 백야'는 주인공이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가 재혼한 가정의 의붓아들을 유혹해 어머니의 며느리가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막말, 폭력묘사, 점술 등 비과학적 내용 등이 제재 사유로 꼽혔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런 드라마가 사회적 윤리의식과 가족의 가치를 저해하고 구성원 간의 정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제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드라마에 문외한(?)이지만 판결을 접하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일들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이합집산이야 늘 있는 일이다. 특별히 신기할 것도, 비판할 이유도 없다. 자신의 당선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이번에 특이한 것은 누군가가 싫어서 새로운 당을 만든 사실이다. 과거 누구와 친하다는 이름으로 당을 만든 경우보다 더 어이없는 정치사적 사건이다. 서로를 비난하며 당을 만들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시 뭉치는 것도 예상했던 경로긴 하지만 허무하다.

과거 자신이 봉사했던 정당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당에 몸담으면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는 것도 황당하다. 과거 비난하던 인물은 치켜세우기 바쁘고, 예전에 높이 평가하던 인물은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도 막장이나 다름없다. 국보위 경력이 뭐가 문제냐며 당당하던 사람이 다음 날 공개 사과를 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비리 관련자는 철저히 배제한다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서로 그런 사람을 모셔가지 못해 안달하는 모양새를 각 당이 연출한다. '공정한 경쟁'을 외치면서 공천경쟁을 하는 예비후보자를 갑자기 최고위원에 임명하는 것은 공정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권을 싸잡아 조롱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사람을 갑자기 다른 지역에 출마하도록 강권하는 것도 어리둥절하다. 권하는 이나 받아들이는 이나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막장 드라마로 손색이 없게 엽기적이다. 고성, 막말, 비난 시리즈는 빠지지 않는 메뉴다. 정치 도의는 말할 것 없고 사회적 윤리와 가치의 기준이 뭔지도 혼란스럽게 만드는 행태다. 청소년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유해한 내용이 매일 펼쳐진다. 더 심각한 막장은 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전은 물론 현실 문제 해결에도 정치가 무능하다는 사실이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엄중한 안보문제, 추락하는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서민들의 삶. 선거는 이런 중대한 문제들에 대한 정치권의 고민과 나름의 해법을 들어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다.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라도 하는 척하면서 주요 이슈에 대한 공론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의는커녕 여야가 합의한 법안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극한의 무능함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의 심판을 말하지만 결과는 또 '우리가 남이가' 식이 될 게 뻔하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선거에 이기면 모든 게 정당화되고, 그 나물에 그 밥으로 돌아가고 만다.
너무 무능한 정치가 너무 과도한 권력을 누리는 이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한 치도 전진하기 어렵다. 지금 당장은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막장 드라마를 제재하듯 정치권을 제재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지 않으면 우리 사회 전체가 막장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정말 두렵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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