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 병들었었나봐요 무대 오르니 치료되네요"
"오랜만에 무대 작업을 하게 됐는데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배우들과 연습하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게 정말 좋아요. 내가 예전에 이런 시간을 더 많이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만큼요."
배우 문소리(42)가 6년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다. 내달 4~2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한·불 공동제작 연극 '빛의 제국'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다. 20년간 서울에서 살아온 남파 간첩 김기영이 어느 날 귀환 명령을 받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문소리는 이 작품에서 김기영의 운동권 출신 아내 장마리 역을 맡았다.
17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만난 문소리는 "점심 먹고 만나서 연습하고 저녁 먹고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시간이 아주 흥미진진하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그는 "장마리는 김기영의 아내이지만 운동권 출신이고 외제차를 파는 딜러이기도 하다"며 맡은 역을 담담히 소개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마음으로 살다가 굉장히 흥미로운 하루를 겪게 되면서 조금 달라지는 인물이에요. 아직 장마리가 누구인지 계속 찾아가는 중이에요. 공연 전까지는 결론이 나겠죠."
문소리는 영화배우로 유명하지만 대학시절 극단 한강의 수습단원으로 '교실 이데아'에 출연하며 연극 무대에서 기본기를 다졌다. "대학 졸업 후에 영화 '박하사탕'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연극으로 시작한 건 맞아요. 극단 차이무의 민복기 연출님 작품에도 출연했었고요."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면서도 지난 2010년에는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광부화가들'에도 출연하는 등 무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연극 무대에 오르면 치료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무대 돌아오면 치료 받는 느낌이에요. 제가 다친 줄도, 아픈 줄도, 병이 심각한 줄도 몰랐는데 말이죠."
무엇보다 무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회복시키는 계기"를 준다. "주변에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있죠. 그보다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까요. 제가 이만큼이나 차가워져 있었다는 걸 무대에서 느끼고 다시 따뜻하게 회복하는 과정을 겪어요. 무대라는 곳이 배우로서 정말 소중한 장소죠."
문소리는 집에서 만든 음식을 챙겨와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먹을 정도로 연극 작업에 빠져있다. 김기영 역으로 문소리와 호흡을 맞추는 배우 지현준은 "화면에서만 보던 문소리라는 배우가 전도 부쳐오고 김치도 해오고 유자청에 가지도 조려온다. 말 그대로 '식구(食口)' 같다"며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렇게 함께 밥을 싸와서 먹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 무대에서 어떤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빛의 제국'은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연극 '스플렌디즈'를 이끈 프랑스 연출가 아르튀르 노지시엘이 연출한다. 서울 공연 이후 오는 5월 프랑스 오를레앙 국립극장 무대에도 오른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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