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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알파고등학교가 어디 있나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15 16:53

수정 2016.03.15 16:53

[노동일 칼럼] "알파고등학교가 어디 있나요?"

"알파고등학교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바둑을 둔 첫날이었을까. 모 방송국의 뉴스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알파고를 '알파고등학교…'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대본이 그런지 아니면 아나운서 본인이 알파고를 고등학교로 해석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비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사건이 상징하는 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다.


'고'라는 말은 바둑의 일본어이고, 알파는 첫 버전이라고 한다. '구글에서 만든 첫 번째 바둑 프로그램' 정도가 알파고의 정체이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컴퓨터 1200대 용량의 연산처리장치(CPU)를 집적해 놓음으로써 고성능이 된 때문이다. 그걸 마치 스스로 생각하면서 인간을 능가할 수도 있는 엄청난 존재로 부각시킨 것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내내 썩 유쾌하지 않았던 게 바로 그 점이다. 한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을 테스트하는 상업적 이벤트에 지나치게 큰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 컴퓨터와 인류 대표의 대결 등등은 너무 나간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만든 기계 혹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성능을 시험해 보는 게 이번 행사의 본질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외면하거나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을 도외시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게 인공지능 기술이다. 구글사의 마케팅 수단에 이세돌 9단이 너무 싼값(?)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도 불편함을 더하는 부분이었다.

이처럼 상쾌하진 않았지만 망외의 소득은 있었다. 뉴스를 일상으로 접하는 사람조차 생소한 단어가 알파고였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언급하는 친숙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바둑 생중계는 국가대표 축구 한·일전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열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도는 유머도 있다. '알파고등학교가 어디 있나요'라는 질문이 우리나라 중3 학부모들의 관심사로 급부상했다는 것이다. 농담이지만 센세이션을 일으킨 덕에 인공지능이라는 어려운 기술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알파고 개발자인 허사비스가 카이스트에서 가진 강연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수용을 못할 정도였다는 기사도 있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김진형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 수준과 우리나라의 격차를 묻지 말라고. 세계 수준과의 차이를 말하기조차 민망한 게 우리나라 인공지능 관련 소프트웨어 기술의 현주소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사람이 없다"는 게 김 교수의 단언이다. 그 이면에는 하드웨어에만 치중하고 소프트웨어를 무시해온 우리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전공한 엔지니어들이 어떤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시간당 계산된 돈을 받거나 프로젝트를 도급받아 연명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딥마인드를 구글에 팔아 대박을 터뜨린 허사비스가 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보이지 않는 기술에 가치를 인정하는 대기업도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의 유능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구글 등을 바라보고 미국으로 몰려드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구글에 이용당했을 수도 있다.
알파고를 고등학교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이벤트가 보이지 않는 기술의 가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세돌의 희생(?)은 미래 세대를 위해 값진 것이 되리라 생각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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