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노동일 칼럼]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12 16:52

수정 2016.04.12 16:52

[노동일 칼럼]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다

이번처럼 투표장에 가기 싫은 때는 없었다. 공개적으로야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을 되뇌곤 한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찍고 싶지 않다. '신성한 한 표'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더 그렇다. 저질 막장의 끝판 왕을 보여준 공천과 선거 과정을 보면서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사전투표를 하지 않은(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쉰 반찬, 썩은 반찬, 더러운 반찬 가운데 하나를 골라 먹어야 하는 밥상을 대하는 느낌이다. 투표 당일까지 미루면 뭔가 답이 나오겠지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선택해야 할 시간이 왔다. 투표는 차악이라도 내 손으로 뽑을 수 있지만 기권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투표장으로 향한다. 소박한 바람은 한 가지다. 오늘 뽑힌 사람들이 선거과정에서의 다짐을 최소한이나마 기억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빌 공(空)자 공약을 최대한 실천하겠노라 애쓰지 않기를 바란다. 상대를 척결해야 할 악의 세력으로 규정했던 선거과정도 잊어 버려야 한다. 선거는 한 번의 단판 승부로 끝낼 수 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속된 말로 이기는 게 장땡이다.

문제는 선거 이후의 국정과 정치의 운영이다. 국정은 단판 승부가 아니다. 상대를 매도하는 것만으로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순간적인 꼼수로 선거를 이길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묘수가 될 수는 없다. 선거 기술이 탁월하다고 정치를 잘하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선거에서 승리한 세력이 국민으로부터 만능 키를 받는 것도 아니다. 지역주의가 판을 치는 소선거구제하에서 국민의 의사가 극도로 왜곡된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선거와 달리 정치는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야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북한 핵과 안보문제는 여전히 엄중한 상태이다. 안보장사라고, 종북세력이라고 서로 비난만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추락하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도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잿빛이다. 우리나라 수출은 지난 1970년 이후 최장기인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4월 들어 지난 10일까지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5.7%나 줄었다. 30대 그룹 고용 인원이 1년 사이 4500명가량 감소해 고용 감소율 0.4%를 기록했다. 늘어도 시원찮은 수출과 고용이 더욱 암담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박근혜정부를, 국회를, 야당을 심판하기만 하면 좋아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치권이 모두 나서 지혜를 모아도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미국 정치권의 젊은 기대주이다. 그가 우리 못지않게 염증을 불러일으키는 공화당 예비선거 과정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정치를 투표와 선거 관점에서만 생각하지만 정치에는 그것을 넘어선 많은 것들이 있다." 정치가 모욕의 대결장이 아닌 아이디어의 대결장이 되어야 한다는 고언이다.

이번 선거가 중차대한 우리 삶의 문제들에 대한 아이디어의 대결장이 되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외면할 수는 없다. 결국 정치가 그런 문제 해결의 아이디어를 내고 결론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욕의 대결장이 되어온 정치판은 오늘까지로 족하다.
내일부터는 국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아이디어의 대결장이 되어야 한다. 투표와 선거만이 정치가 아니다.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