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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사고 이후가 더 두렵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07 16:59

수정 2016.06.07 16:59

[노동일 칼럼] 사고 이후가 더 두렵다

"지난해 8월 우리 애가 희생된 강남역 사건과 너무 똑같아요. '2인 1조' 수칙을 못 지킨 것도, 현장 기술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떠넘기는 것도. 그때 제대로 개선했다면, 서울메트로가 반성했다면 구의역에서 열아홉 살짜리 아이가 이토록 안타깝게 죽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최근 강남역 인근에서 정신병력자에 의해 살해된 이른바 '강남역 사건' 이전에 '강남역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8월 스크린 도어를 고치던 정비업체 직원 조모씨가 열차에 치여 숨진 것이다. 당시 서울메트로는 "'2인1조 정비' 규정을 어겼다"는 등 사고 책임을 조씨 개인과 업체에 떠넘겼다. 숨진 조씨의 아버지가 최근 한 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책임 면하기에만 급급할 뿐 아무것도 개선하지 않은 결과가 또다시 구의역 참극을 부른 것이다. 20대 젊은이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태가 조직이나 개인에게 어떤 충격도 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구의역 참극을 대하는 서울메트로와 책임자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구의역 사고 후 첫 발언은 "피해자가 안전규정을 어겼다"는 판에 박은 것이었다. '열아홉 살짜리 아이'의 죽음이라는 참담한 일을 앞에 놓고도 자리보전과 책임회피만이 최대의 관심사로 보인다. 안전업무의 외주화 재검토라는 영혼 없는 대책이 즉각 나오는 것도 허탈하다. 서울메트로 출신이 외주회사로 옮겨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 사망한 김군과 같은 비정규직을 사실상 착취하는 구조가 문제의 본질임을 외면한 것이기 때문이다. 메피아의 존재를 몰랐다는 박원순 시장의 발언은 이런 구조를 전혀 모르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표를 받는 시늉을 내다가 '쇼'라는 비판을 받자 여론에 밀려 징계를 내리기도 한다. 실제로는 혼자만 내보내면서 2인 1조 작업을 한다는 허위서류 작성이 일상화된 조직이니 어련할까 싶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느닷없이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백보를 양보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사고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위나 아래나 모두 면피에 급급할 뿐 근본적인 문제의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엄청난 비극이 발생해도 그때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구조에 절망의 근원이 있다. 정말 묻고 싶다. 메트로 퇴직자들을 비롯한 책임자급의 사람들에게도 강남역에서, 구의역에서 사망한 청년들 또래의 자식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아이들이 어처구니없이 죽어나가는 사태에 정말 아무런 마음의 떨림이 없을까. 진정 애통해하며 가슴 아파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반복되는 상황을 방치할 수 있을까. 서울 교육감에 출마했던 어떤 사람처럼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할까. "공부 열심히 안하면 너도 저렇게 돼." 오직 앞만 보고 달려서 너도 갑질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야 한다고 할까. 사망한 젊은이를 명예기관사로 임명하겠다는 얘기를 접하면 그 무신경함에 숨이 막힌다.

두려운 건 구의역 사건도 조만간 잊혀진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당장은 외주화 금지, 민관합동 조사 등 대책을 마련하는 것처럼 수선을 피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언제 그랬냐는 일이 될 게 틀림없다.
경험이 말해준다.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을 진정 가슴 아파하고 피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자세가 없다면 근본적인 변화는 요원하다.
"그때 제대로 개선했다면, 서울메트로가 반성했다면…." 언젠가 이런 말을 또 할 때가 올 것을 생각하는 게 정말 두렵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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