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회의원의 특권이 200여가지나 된다고 한다. 짐작하건대 국회의원이 누리는 게 너무 많다는 비판의 산물인 듯하다. 하는 일(?)에 비해 과다해 보이는 세비, 친인척 보좌진 채용, 항공기와 철도 공짜 이용, 의원 전용 출입문, 공항 귀빈실 사용 등. 국민들 눈에 마땅찮아 보이는 걸 모두 특권으로 치는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들을 오죽 싫어하면 그럴까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진 모든 걸 특권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특권(privileges)과 권한(powers), 혹은 권리(rights)는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의원의 진정한 특권은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의미한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으며(면책특권),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에 국회의 동의가 없으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불체포특권).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 소송 등 곤욕을 치르기 십상인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특권이다.
면책특권이 왕정 시절 영국에서 의회의 특권으로 처음 인정된 사실은 그 성격을 말해준다. 의회가 절대 군주의 눈치를 보지 말라는 뜻이다. 면책특권을 받아들인 미국 헌법이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함께 규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막강한 행정권력은 물론 손해배상 등의 간접적 압박도 의식하지 않도록 해준 것이다. 강력한 방패를 만든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 견제와 입법 등에 있어 소신껏 활동하라는 것이다. 물론 악용의 소지도 있다. 미국의 경우지만 의원이 뇌물의 대가로 특정인에게 유리한 토론과 표결을 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뇌물과 연결시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미 연방대법원은 부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역사적으로 볼 때 면책특권을 도입한 헌법 제정자들의 의도는 옳았다고 단언한다. 의회에서의 자유로운 발언과 토론을 보장하는 면책특권의 본래 기능이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최대 화두가 되었다. 더민주 서영교 의원의 가족 관련 비리가 촉발한 흐름이다. 이번 기회를 국회의원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제고할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친인척 채용 등 잘못된 관행도 바꾸어야 한다. 말만 무성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하는 행태도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특권 내려놓기라는 이름으로 진짜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식의 흐름은 위험하다. 더민주 조응천 의원의 허위사실 폭로를 면책특권으로 감쌀 생각은 없다. 부패행위에 연루된 동료를 위한 방탄국회도 지탄의 대상이다. 그런 문제에 대한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국회 밖에서 홈페이지 등에 자료를 올리는 등의 행위는 면책특권의 대상이 아니다.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은 국회에서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체포동의안이 자동표결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 등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의원들이 특권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면책특권은 의원들이 거대한 권력과 맞서야 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로서 진실 편에 설 수 있는 무기로 주어진 것이다. 발언이 다른 이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혹 있어도 더 큰 공익을 위해서는 용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떻게든 튀어보려는 목적의 자잘한 폭로를 위해 면책특권 뒤에 숨으라는 게 아니다. 뇌물을 받거나 부정한 행위를 하고 불체포특권을 내세우라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특권을 활용해 일만 잘하면야 아무리 많은 특권이 있든 누가 그걸 탓하랴. 일하기 위한 특권이 아니라 누리고 군림하는 특권이라 생각하는 의원들이 문제의 핵심임을 알아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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