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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이철성 경찰청장을 바라보는 민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30 17:45

수정 2016.08.30 17:45

[노동일 칼럼] 이철성 경찰청장을 바라보는 민심

처음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다. 경찰 내 모든 계급을 거친 순경 출신 경찰청장. 개인적 인연도 없고, 일면식조차 없지만 박수 쳐주고 싶었다. 금수저, 흙수저론을 통쾌하게 전복시키는 사건으로 보았다. 누진제 논란으로 더 짜증스러운 무더위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이는 듯했다. 음주운전 전력 논란이 나왔을 때 살짝 사심(?)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사소한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20년이 넘었고 많이 반성해서 더 열심히 한 덕분에 여기까지 왔겠지."

하지만 막상 알게 된 과오는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단속에 걸린 것으로 생각했던 음주운전 전력은 대형 음주사고였다. 대낮에 술을 마시고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차를 대파시킨 사고. 게다가 신분을 밝히지 않아 징계를 면했다는 고백까지. 사건의 전말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반가웠던 생각은 분노로 이어졌다. 경찰청장은 공권력의 상징 아닌가. 음주사고에 경찰관 신분을 은폐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까지야 기록을 숨기며 버틸 수 있었다 치자. 모든 것이 공개되는 청문회에 당당히 나선 것은 무슨 심사일까. 영혼까지 탈탈 턴다는 검증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것은 또 무슨 조홧속일까. 저간의 사정을 숨길 수 있을 만큼 민정수석실이 허술했을까. 솔직히 털어놓았지만 그 정도는 흠이 아니라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한 것일까.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주 이 후보자의 임명이 일시 보류됐을 때 한 가닥 희망을 가졌었다. 명예롭게 물러설 기회를 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도 잠시. 권력의 속성을 너무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었음을 깨닫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이철성 경찰청장이 된 마당에 어쩌면 쓸모없는 글일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지면을 메운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이 청장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허탈함으로 바뀌어간 민심을 새겨달라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향후 이 청장의 처신이다. 권력층에 신세를 졌다는 생각에 권력의 입맛에 맞는 법집행을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경찰청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경찰이 집행하는 공권력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것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엄격한 정치적 중립성의 바탕 위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때 경찰은 말 그대로 민중의 지팡이가 될 수 있다.

레이먼드 켈리는 두 차례(1992~1994년, 2002~2013년)에 걸쳐 뉴욕 경찰의 최고책임자인 커미셔너를 지냈다. 말단경찰로 시작해 미국 법집행 기관의 상징인 뉴욕 경찰 수장에 오른 전설적 인물이다. 켈리 커미셔너는 재직 중 치안 확보에 큰 성과를 냈지만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적인 불심검문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그는 2013년 퇴임 시 당당하게 자평했다. "내 재임기에 관한 한 단 하나라도 중대한 실책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이 청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변명의 여지 없이 제가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경찰 동료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이 청장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대목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청장이 본인의 말처럼 "시작은 이랬지만" 퇴임 시는 국민을 향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재임시 한 치의 과오도 없었다"고. '경찰청장 다음'을 바라보지만 않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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