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노동일 칼럼] 정치도 복기가 필요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27 17:14

수정 2016.09.27 17:14

[노동일 칼럼] 정치도 복기가 필요하다


정치가 또다시 마비되었다. 고성, 막말, 삿대질, 규탄대회, 단식농성. 너무도 익숙한 우리 정치의 모습이다. 굳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느끼지 못하지만 아쉬움이 크다. '최악의 국회'인 19대 국회보다는 나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총선 후 정치인들 스스로 다짐했던 협치가 이런 것은 아닐 터이다.
상황을 복기해보면 이렇게까지 정치 마비를 부를 일이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떠오르는 장면은 김재수 장관의 처신이다. 이미 장관으로 임명된 마당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흙수저, 지방대 출신이라 무시당했다는 글을 굳이 올릴 필요가 있었을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야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국민들이 그 억울함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언론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문제를 삼겠다는 투의 글은 정무적 판단이 요구되는 장관으로서는 더더욱 삼갔어야 한다. 일파만파 정치의 마비를 불러온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렇다 해도 이를 빌미로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한 야당의 대응은 정략적이다. 세월호 특조위 기간 연장이나 어버이연합에 대한 청문회를 얻어내기 위한 방편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장관 해임건의는 무거운 의미를 지닌 국회의 권한이다. 해임건의안 사유로 '국회 모독'을 든 것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 헌법은 해임건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국회의원의 기분을 나쁘게 한 장관이 해임건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직무수행 중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거나,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거나, 정책추진 과정에서 커다란 잘못이 있는 등의 사유가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응도 아쉽다. 국민의 당은 애초의 태도를 바꾸어 해임건의안 발의에 찬성하지 않았다. 여권으로서는 국민의 당을 우군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를 감안해 보면 "대화를 위해 주었던 돈이 북한의 핵개발 자금"이 되었다는 언급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았다.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다. 김대중정부 시절 대북송금 주역이었던 박지원 국민의 당 비대위원장을 발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정무적 판단이 요구되는 국면에서 국민의 당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우를 범한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정치실종에 한몫했다. 새누리당이 일종의 지연전술로 시한을 넘기려 했다면 못이기는 체했어야 한다. 해임건의안이나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등이 표결 시한을 넘겨 자동폐기된 경우는 허다하다. 정 의장은 해임건의안 자체가 야당의 정략이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통과될 경우와 무산될 경우 닥칠 정치적 후폭풍이 다를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특별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판단을 한 것이다. 우리처럼 첨예한 당파적 상황에서는 친정으로부터 섭섭하다는 말을 들어야 겨우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

여당이 국정감사를 거부하고, 여당 대표가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빠른 시간 내에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까지 둔 바둑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잘못된 수를 두었다면 이를 되풀이하지 않는 게 회복의 첩경이다. 연관된 당사자 모두가 각자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장관도, 야당도, 여당도, 대통령도, 국회의장도 잘못된 수를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