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리피니티브 자료를 인용해 올해 1~2월 동안 세계 스팩들이 체결한 인수합병(M&A) 금액이 1090억달러(약 122조원)로 역대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전 세계에 부는 스팩 광풍
스팩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다. 투자자들은 우선 돈을 모아 스팩을 만들어 상장한 다음 자금 모집 당시 목표로 밝힌 실제 기업을 기한 내에 합병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복잡한 절차 없이 비상장 우량기업을 손쉽게 상장기업으로 만들 수 있고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긴다.
합병 기한은 보통 2년이며 스팩은 기한 내에 합병을 못 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달 체결된 스팩 M&A 계약 건수는 50건이었으며 전 세계 M&A 계약 가운데 스팩이 연루된 비중은 20%가 넘었다. 세계 M&A 규모는 스팩 계약의 급증 덕분에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56% 증가한 7000억달러 수준으로 뛰었다.
국가별로 스팩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었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188개 스팩이 580억달러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지난해의 경우 244개 스팩이 한 해 동안 780억달러를 유치했다.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전기차 기업 루시드모터스는 지난달 유명 스팩인 처칠캐피탈(나스닥 상장사)과 합병을 발표했으며 240억달러의 가치를 인정 받았다. 처칠캐피탈은 테슬라, 애플, 게임스톱에 이어 국내 '서학개미(해외주식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해외주식 4위에 오른 종목이다.
또한 비행 택시를 개발하고 있는 조비항공은 스팩 기업 리인벤트테크놀러지파트너스와 합병해 뉴욕 증시에 진출할 예정이며 기업 가치는 66억달러로 추정된다. 조비의 경쟁사인 아처항공도 미 억만장자 투자자 켄 모엘리스가 지원하는 스팩과 합병한다. 모엘리스 외에도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아크만, 테니스 챔피언 세레나 윌리엄스, 래퍼 제이지 등 여러 유명인들이 스팩을 세우고 자금 모집에 나섰다.
미 투자사 마케나캐피털매니지먼트의 잭슨 가튼 상무이사는 "역사적으로 스팩은 더러운 4글자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는 스팩을 이용한 우회 상장을 바람직하게 보지 않았지만 최근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일확천금 노리는 개미 몰려
스팩이 최근 큰 인기를 얻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개미 군단의 진격이다. 미 현지 매체들은 1일 보도에서 과거 공매도 관련 주식이나 게임스탑 주식같이 한번 폭락한 주식을 노렸던 개미들이 이제는 스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개미들은 일반적으로 IPO에 지원해 상장 기업의 주식을 배당받기 매우 어렵다. 상장 기업들이 주가 안정을 위해 공모 지분 대부분을 일정 기간 보유 조건을 달아 기관투자자들에게 넘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팩에 투자해 상장 기업의 지분을 받는 방식이라면 개미들 역시 IPO에 따른 주가 급등으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처칠캐피탈의 주가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548% 뛰었으며 시가 총액이 170억달러에 이르렀다.
미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주가가 10% 이상 오른 스팩은 25개 달하며 이는 2020년 한 해(7개)보다 많은 숫자다. 25개 스팩 가운데 M&A 상대가 정해진 기업은 단 1곳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개미들의 '묻지마 투자'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스팩으로 우회상장하는 기업들 대부분이 아직 실제 매출이 없는 창업 초기기업(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처칠캐피탈 주가는 루시드 모터스의 대량 생산이 코로나19로 지연된다는 소식과 더불어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M&A 발표 1주일 만에 42% 폭락했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에릭 해켈 대체증권 대표는 "비록 대단한 거래를 진행하는 스팩과 경영진들이 많지만 필연적으로 대규모 투자에도 수준 낮은 자산을 가져오는 거래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경영자(CEO)도 지난달 "스팩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며 "스팩 시장 붐은 2021년 이후까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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