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업과 옛 신문광고

[기업과 옛 신문광고] 66년 만에 사라지는 대한극장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05.09 18:35

수정 2024.05.09 18:35

[기업과 옛 신문광고] 66년 만에 사라지는 대한극장
서울 구도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돈화문로와 충무로에는 개봉관 극장들이 즐비했었다. 스크린이 하나밖에 없는 단관 극장이었다. 종로3가 쪽의 단성사·피카디리·서울을 필두로 을지로3가역 근처의 명보·스카라, 충무로역에서 가까운 대한·국도 등이다.

1907년 최초의 상설 영화관으로 개관한 단성사는 1919년 10월 27일 한국 최초의 영화인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개봉한 유서 깊은 영화관이었다. 10월 27일은 영화의 날로 돼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 등장 이후 단성사도 복합상영관으로 리모델링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2008년 사라졌다.
보석 가게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1950년대에 메트로극장으로 출발해 1979년 재출발한 서울극장도 멀티플렉스화를 시도하며 분투했지만 2021년 8월 스크린을 내렸다. 그나마 피카디리는 시류에 편승해 멀티플렉스의 일원으로 살아남았다. 1958년 문을 연 이 극장의 현재 이름은 CGV 피카디리1958이다.

1957년을 문을 연 명보극장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여러 영화를 단독 개봉했고 주성치 등 해외 스타들이 내한해 시사회를 연 곳이기도 하다. 배우 신영균이 인수해 운영하다 단성사와 함께 2008년 은막을 거뒀다. 뮤지컬 등을 공연하는 명보아트홀로 명맥은 이어가고 있다.

명보의 맞은편에 있던 스카라극장은 1935년 설립되어 1946년 수도극장, 1962년 스카라로 이름을 바꿨다. 2000년대에 시설을 보수해 월드컵 축구 경기를 극장에서 생중계하는 등의 이벤트를 벌이며 멀티플렉스의 공세에 맞섰다. 곡선 형태의 건물 외관으로 오페라 극장과 닮았던 스카라를 문화재청이 2005년 11월 근대문화재로 등록하겠다고 예고하자 소유주는 건물을 기습적으로 철거해 버렸다. 문화재로 등록되면 재건축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알고 동원한 편법이었다. '아시아미디어타워'라는 새 건물이 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충무로의 국도극장은 일제강점기에 황금연예관으로 시작했다가 광복 이후 건물을 신축해 국도라는 새 이름으로 유명 극장 대열에 올라섰다. 국도극장은 1999년 일찍 변신을 시도해 호텔로 탈바꿈했다. 명동성당 가까이 있던 중앙극장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2010년 문을 닫은 뒤 일대가 재개발되어 대신증권 본사 건물이 들어섰다. 세종로에 있던 국제극장은 재건축으로 그보다 먼저 자취를 감췄다. 현재 동화면세점이 있는 광화문빌딩이 되어 있다. 그나마 탑골공원 옆의 허리우드는 실버영화관으로 살아남았다.

1960년대까지 신문 광고면의 대부분은 영화 광고가 메웠다. 극장이 없었다면 광고란을 다 채우기 어려울 정도였고, 신문사 영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먹고살기 힘들 때 영화는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활력소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절의 극장은 화장실 냄새 등 악취가 진동했고, 성추행범들이 득실거렸다. 담배를 피워대 극장 안은 연기가 자욱했다. 1958년 개관한 대한극장은 최신식 시설을 갖춘 신축 극장이었다. 광고에도 푹신한 좌석과 시원한 에어컨,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춘 일류극장이라고 쓰여 있다(경향신문 1958년 3월 25일자·사진). 개관 기념 상영작은 존 웨인·라나 터너 주연의 '애혼'(1955)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관 대한극장도 복합상영관 형태로 건물을 개조해 영화를 상영하며 다른 단관 극장들이 문을 닫은 후에도 오랫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코로나 팬데믹도 잘 넘기는 듯했지만, 결국 최후의 고비는 극복하지 못했다. 오는 9월 말까지만 영화를 상영하고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로써 많은 중장년 관객들의 추억이 서린 옛 극장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CGV 같은 멀티플렉스 또한 언제 어떤 운명을 마주할지 짐작하기 어렵다. 거대한 디스플레이를 집 안에 설치해 놓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나의 스크린을 가진 작은 규모의 단관 극장이 다시 등장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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