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같은 섬들의 유혹
2004.11.09 12:05
수정 : 2014.11.07 12:18기사원문
한국 민중사진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김영수씨(58)의 인사동 허름한 작업실에는 많은 소품들이 벽과 탁자에 빼곡히 걸려 있거나 놓여 있다.바싹 말라 뼈가 드러난 북어가 먼지 쌓인 채 놓여 있는가 하면,메마른 무궁화 몇송이가 성조기가 그려진 쥐틀에 물려 있는 소품도 보인다.소품들에는 모두 흘러간 시간의 향수가 배여있다.
시간의 향수는 김씨의 작업모티브이기도 하다.
흘러간 시간의 향수를 담아내기 위해 김씨는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의 섬 80여 곳을 돌아 다니며 섬의 풍광과 서사를 기록해 왔다.
한려수도,다도해,여수만,신안군,옹진군,변산,백령도,울릉,진도,제주 등 웬만한 섬을 섭렵한 그는 스스로 “바다에 중독되었다”고 말할 정도다.
어린시절 통영 앞바다의 작은 섬 연화도에서 외할아버지와 함께 버려지듯 살아 온 그의 뇌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은 바로 섬살이의 고독했던 추억이었다.수십년간 고향을 잊고 살아 온 그에게 섬은 기억과 흔적이었고 그리움이며 ‘떠도는 고향’이었다.
원초의 신비와 외딴 세계의 비밀을 간직한 섬은 육지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문명의 시간을 배제한 섬은 내밀한 그대로를 간직한 채 말이 없다.그저 바다에 떠 있을뿐이다.그래서 시인 송수권은 ‘꿈꾸는 섬’이라는 시에서 ’‘섬은 즐거우며,슬퍼며,말이 없다’고 노래했다.섬은 곧 소녀의 웃음이었으며 잔풀꽃들이 길을 밝혀주는 곳이기도 했다.
육순을 바라보는 김씨가 그동안 작업해 왔던 섬이야기를 보여준다.
섬이 간직했던 비밀의 유토피아를 활짝 연다.‘떠도는 섬’이라는 주제로 서울 평창동 가나포럼스페이스에서 50여점을 전시한다.8년만의 개인전이다(12일부터 30일까지).
하나같이 회화같은 작품들이다.하늘,바다,외딴 섬,갈매기,파도,조약돌,작은 어촌,뱃고동. 이 모두가 신비한 흑백영상의 피사체로 담겨져 있다.
그는 비오는 날,흐린 날,바람부는 날,새벽,해질녘에만 촬영한다.작품의 심도를 높이기위해서다.그의 사진작업 기법은 색 다르다.아날로그와 디지털방식을 혼용한다.아날로그 방식으로 인화된 사진을 디지털방식으로 다시 스캔한다.그리고 한지나 판화지에 잉크젯 프린터로 확대 인쇄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섬과 바다,하늘의 경계가 흐릿한 흑백사진은 판화느낌을 주면서 수묵풍경 분위기를 연출한다.현대와 전통적 시선이 조화하면서 섬세한 감각과 정적인 역동성을 보여준다.짭짤한 바다내음과 함께 미려한 실루엣의 조형미가 먼저 와 닿는다.
민족사진가협회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객원교수를 맡고 있는 김씨는 그동안 ‘와이키키 브라더스’등 몇몇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청년전태일’ ‘강원도의 힘’등 영화포스터와 현장사진 작업에도 참여 했다. 80년대와 90년대엔 언더그라운드적 작업을 하며 인물중심과 현대사의 아픈 흔적을 기록해 왔다.
당뇨·간경화와 힘겹게 싸우면서도 창작의 혼을 불 태우는 김씨의 ‘떠도는 섬’은 짭짜름한 바다내음과 추억을 담은 작가만의 섬에 대한 회상법이자 감성적 지리지이다.
전시작품에 관한 설명을 마친 그는 밤길을 친구삼아 섬으로 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02)720-1020.
/ jjjang@fnnews.com 장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