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상상 돋보이는 환타지소설
2005.06.29 13:28
수정 : 2014.11.07 17:19기사원문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서쪽숲’ 등의 노래로 이미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보여줬던 뮤지션 이적이 자신의 홈페이지 ‘夢想笛-liijuck.com’에 간간이 공개하던 판타스틱 픽션들 중 열두 편을 모아 엮어냈다.
■리뷰=우리는 이 환타지 소설집의 저자가 이적임을 잊고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탁월한 상상력과 충동적인 문체로 무장해 찬사를 받기에 손색이 없는 환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작가가 아닌 가수 이적의 취미수준으로 읽어보기도 전에 비하해 버릴 가능성 때문이다.
표제작이 된 ‘지문사냥꾼’을 포함한 총 12편의 굵고 짧은 환타지성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적지 않은 칭찬을 받아야 하는 대목은 바로 독자들을 순식간에 책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드는 독특하고 기괴한 일러스트에 있다. 책의 내용과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일러스트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몫을 하며 독자들의 기억속에 인상적으로 뿌리를 박아버린다. 자세히 책을 읽어보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그림을 그리느라 고생한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팀의 자취는 없는 듯 하다. 그러고 보니 그래서 더 신비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신비주의 인가. 어쨋든 필자에 이어 책을 접하게 될 수많은 독자들은 탁월한 감각의 일러스트를 주의깊게 바라보아 주길 바란다. 책을 읽는 재미와 느낌은 사못 배가될 것이다.
역시 뭐니뭐니해도 단편소설집의 백미는 짧고 굵게 줄줄이 비엔나로 이어지는 맛 아니겠는가. 표제작 ‘지문사냥꾼’도 물론 훌륭하지만 이런 관점에서는 약간 지루하게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는 가운데 필자의 외사랑을 단숨에 가로챈 단편 한편을 소개해 주지 않고는 참을 수 없다. 귀가길에 지하철에서 ‘자백’이라는 이름의 단편을 읽다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졸지에 ‘미친 녀석’(?)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야 말았다. 체면이 구겨졌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왜냐하면 엄청난 공감을 필자에게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고백’은 자신의 범행을 솔직하게 나레이션처럼 읊어대는 살인자의 고백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타인때문에 짜증을 유발하게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워낙에 성질이 뭣같은 인간뿐만 아니라 평소 ‘생부처’라는 닉네임을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입에서 욕설이 뱅뱅 맴돌게 하는 인간은 어디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 아닌가. 걸죽한 전통의 걸레빛 욕설로 얼룩져 혹 내숭을 지켜야말 덕목으로 간직한 뭇여성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핸드폰을 삘릴리 소리나게 껐다고 해서 첼로줄로 목을 졸라 죽이고…. 극장 앞자리에 대가리 큰 넘이 앉았다고 전기톱으로 머리통을 자르는가 하면, 발레 공연장에서 떠들었다고 가마니에 담아 처리(?)해 버리는 둥 평소 독자들이 짜증나긴 하지만 상상속에서나 해보았을 뿐인 욕망을 속시원히 해결해 줌으로써 대리만족의 극치를 달리도록 해준다.
마지막으로 이적을 평하는 소설가 김영하의 멘트를 통해 이 글을 마친다. “글이란 장인적 훈련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숨어있는 괴물이 대신 써주는 것이다.”
/리뷰=ohmalove(http://booklog.kyobobook.co.kr/ohmalove)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