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에 산 게 죄인가/곽인찬 논설위원

      2007.03.20 16:42   수정 : 2014.11.13 14:31기사원문


내가 사는 아파트 얘기 좀 해보자. 91년에 서울 양천구 목동으로 이사했으니까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에 16년째 살고 있다. 목동으로 이사한 이유는 간단하다. 처가가 목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외할머니 손에 컸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맞벌이에 자식 하나를 둔 대졸(大卒) 베이비 붐 세대 중에 나 같은 남자가 꽤 있을 듯 싶다.


이렇게 해서 목동은 내 터전이 됐다. 살다보니 좋은 점이 많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 초·중학교가 바로 단지 안에 있는 게 맘에 들었다. 딸애가 큰 찻길을 건널 필요가 없으니 한결 맘이 놓였다.

병원 할인점 백화점 영화관 같은 시설도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하철 5호선도 뚫렸다. 중심축을 따라 높은 건물도 속속 세워졌다. 목동은 중심축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날개처럼 펼쳐진 구조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중심축에 노는 땅이 많았다. 심심풀이 삼아 채소를 키우는 분도 꽤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공사판이 벌어지더니 급기야 국내에서 63빌딩 다음으로 높다는 건물까지 들어섰다. 방송국 본사 건물도 여의도에서 옮겨 왔다.

이 같은 사태 전개에 대해선 부정과 긍정이 교차한다. 먼저 부정적인 측면. 예전에는 3층이라도 집 안에서 시야가 제법 뚫렸는데 지금은 꽉 막혔다. 고층 건물이 잇따라 들어서자 길도 수시로 막힌다. 상주 인구가 확 늘면서 초·중학교는 교실이 모자라 증축·신축 공사를 벌여야 했다. 학급당 인원도 크게 늘었다. 중학교엔 18반도 있는 모양이다. 목동에 특목고 진학생이 가장 많다며 교육특구 운운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슬그머니 웃는다. 학생 수가 많으니까 그렇지 뭐….

집값은 크게 올랐다. 특히 이 정권들어 무슨 거창한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들썩거렸다. 교육 여건은 강남에 꿀릴 게 없다는 동네 지방색(色)도 은근히 작용하는 듯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집값이 오르니까 싫지 않았다. 나중에 목동 아파트 팔고 버블 세븐 이외 지역으로 이사 갔을 때 같은 평수에 돈이 얼마나 남을지 따져보는 버릇도 생겼다.

괜찮은 환경에 살면서 집값도 올랐으니 세금을 좀 더 내는 건 건전한 시민의 의무다. 실제로 재산세 과표를 시세에 근접시키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지난 몇 년 간 세금이 꾸준히 늘었다. 그래도 저항감은 거의 없었다. 차근차근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올랐기 때문이다.

올해는 다르다. 건교부 공시가격을 열람해보니 내가 사는 아파트 값이 6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꼼짝없이 종부세 폭격을 맞을 판이다. 줄잡아 수백만원은 각오해야 할 듯하다. 현기증이 인다.

16년 동안 목동에 살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게 있나 곰곰 생각해 본다. 집 안 팔고 한 곳에 오래 산 게 죄라면 죄다. 차라리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투기라도 했다면 덜 억울할까. 목 좋은 데 산다고 자릿세 뜯기는 기분이다. 집이 몇 채 있으면 전세나 월세 올려서 돌려막으면 그만이지만 1주택자는 생돈 나갈 판이다. 이 마당에 국록(國祿)을 받는 경제부총리란 사람은 형편 안 좋으면 이사가란다. 친절도 하셔라.

양도세라면 기꺼이 낼 용의가 있다. 실제 집을 팔아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실현 이익에 느닷없이 수백만원대 세금은 상식 밖이다. 소득 뻔한 월급쟁이한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느니 엉뚱한 소리나 하는 이 정권에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대신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비 투기성 1주택 장기보유자에 물리는 종부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약 500년 전 마키아벨리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자기 소유물을 빼앗겼을 때보다 부모가 죽은 쪽을 더 빨리 잊는 법이다.
” 나야말로 꼭 그 짝이 나게 생겼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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