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치니 ‘억’…박종철 고문치사 “조직적 은폐시도 있었다”

      2009.06.07 13:04   수정 : 2009.06.07 13:04기사원문
“조사받던 중 책상을 ‘탁’ 치니 ‘억’ 하며 쓰러져 심장 쇼크로 사망했다”

이른바 ‘박종철군 고문 치사사건’으로 알려져 지난 1987년 6월 10일 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됐던 사건에 수사당국과 정부·청와대 등의 치밀한 은폐·조작 시도가 있었던 사실이 사건 발생 23년만에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내무부, 법무부, 청와대 등으로 구성된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개입해 사건을 은폐 조작했던 사실을 확인, 국가가 피해자 유족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고 7일 밝혔다.

또 진실화해위는 검찰이 수사권 개입을 방조함으로써 직무유기를 저질렀고 정부와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진행돼 대책이 논의됐으며 이로 인해 수사기관이 검찰에서 치안본부(현 경찰청)로 바뀌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는 당시 안기부장으로부터 “‘경찰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내용을 누가 믿겠느냐라고 대책회의에서 말한 기억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도 전했다.

또 당시 치안본부는 검찰의 사체 부검결과 박군의 사인이 쇼크사가 아니라 가혹행위 과정에서 일어난 질식사로 밝혀졌으나 관계기관 대책회의 논의 이후 부검 결과를 왜곡해 발표하는 등 고문 치사를 지속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진실화해위는 덧붙였다.


당시 대통령의 사건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결과가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직접 보고했을 관련자들(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법무부장관)이 사망함에 따라 사실여부를 최종 확인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 김준곤 상임위원은 “당시 검찰은 직접 수사에 착수하고도 외압에 의해 가해주체인 치안본부에 수사를 넘기는 등 수사권 독립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검찰의 수사권한을 방해한 관계기관 대책회의 참석자들이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 사건의 고문에 가담했던 수사관 등 실무자 5명과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간부 4명이 처벌됐으나 박군의 유족은 이들보다 더 지위가 높은 정부 관계자들이 진상을 은폐·조작하려한 점이 해명되지 않았다며 진실화해위에 진상 규명을 신청했다.


한편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군은 지난 1987년 1월 14일 서울 용산구 갈월동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 조사실에서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수배자의 소재에 관해 조사를 받던 중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hong@fnnews.com홍석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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