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경제’ 보셨어요?/김주식 문화레저부장
2009.07.09 17:15
수정 : 2009.07.09 17:15기사원문
그의 사주에 역마살이 끼었다. 동분서주 떠돌아다녀야 할 팔자다. 그래야 명줄을 이어갈 수 있다고 예언돼 있다. 그래서다. 똬리를 틀라치면 날선 논쟁거리로 도마 위에 올랐고 그는 그때마다 타고난 기구한 운명을 장탄식했다.
그가 장터에 나가 깃발을 휘날리면 문전성시를 이뤘다. 신통력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산기계가 착착 돌아갔고 소비도 진작됐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열광했다. 신분가치도 점차 격상됐고 언제부터인가 그를 흠모하며 군침을 삼키는 팬클럽까지 생겼다.
그 기구하고도 위력적인 돈이 탈선했다. 그로서는 몸값(금리)을 낮춘 게 화근이 됐다. 상심한 그는 한동안 손을 뗐던 도박판에 뛰어들어 해방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거기서 ‘그 때 그 시절’ 재테크 귀재로 소문난 부동산, 증권, 펀드 도사와 다시 뭉쳤고 축배를 들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유동성(流動性)’이라 불렀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떠돌아다니는 기질이 엇비슷해 시나브로 붙여진 애칭이다. 그들은 ‘부동산 경기 활성화, 증시 부양, 금융산업 육성’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헬리콥터에 몸을 실은 경기부양용 돈은 불투명한 경기전망에 방향타를 잃은 채 추락했다. 바람을 타던 뭉칫돈은 서울 강남아파트단지며 증권가로 귀신같이 떨어졌다. 그는 ‘돈 놓고 돈 먹기식’ 마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는 도박의 귀재 부동산이 벌여놓은 야바위판에 점점 빨려들어갔다.
사람들은 그가 설비투자와 랑데부해 일가를 이루기를 그토록 갈망했다. 그래서 줄줄이 알사탕으로 고용을 낳아 실물경제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학수고대했건만 그는 끝내 뿌리쳤다. ‘투자 확대 →고용 창출→소득 증가→소비 증가→생산 증가→투자 확대’의 보랏빛 청사진은 속절없이 빛바랬다.
불황 속에 비생산적인 재테크에만 몰입한 게 어언 6개월여. 굴곡으로 굽이치는 저 대하드라마 같은 그의 비극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함께 절정으로 치달았다. 부동산은 그 사이 몸집을 점점 불려갔고 봇물을 이룬 돈의 위력에 판돈도 커졌다. 이미 물 건너 갔다던 강남불패신화도 부활했다.
글로벌을 지향하는 증권 역시 돈맛을 봤다. 그는 달러와 총성 없는 사이버전쟁을 벌였다. 판돈이 큰데다 회전율이 높아 재미를 더했다. 하지만 달러가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통에 졸졸거리는 냇물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주객이 전도된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실물경제가 통째 흔들리기도 했다.
증권과 사촌지간인 펀드가 끼어들면 판돈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큰손 달러가 다국적 헤지펀드를 앞세워 국내 외환시장을 쥐락펴락했다. 그들에겐 국내 외환시장은 단판 승부를 낼 수 있는 천국. 단기간에 수익을 올리고 덤으로 환차익까지 챙겼다. 이때마다 원·달러 환율은 소스라치게 요동쳤다.
엊그제 때마침 철퇴가 내려졌다. ‘돈줄’인 주택담보대출 창구를 조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역에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는 최대 집값의 50%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는 지침이 떨어졌다. 한데 발빠른 부동산은 이미 거액의 판돈을 챙긴 뒤 잠적했으니 뒷북을 친 격이다.
그래서일까. 저인망 규제가 또 하나 나왔다. 내년부터 3주택 이상 다주택 소유자와 9억원 이상짜리 1주택 소유자가 받는 전세보증금에도 월세처럼 임대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물론 ‘이르면’ 내년부터라는 단서를 달았다.
경제는 역시 타이밍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때를 점칠 수 있는 예고편 시놉시스가 없으니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국민은 그래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저 극적인 대하드라마에 매일같이 가슴을 죄며 숨죽인다.
/joosi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