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국과수, 지원이 시급하다
얼마 전 부검을 참관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방문했다. 도착해서 국과수 구석에 있는 별도의 건물로 향했다.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갈 법한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좁은 통로가 나왔다. 우측으로 ‘참관실’이라고 써 있는 팻말이 보였다. “오늘 부검을 직접 참관할 수 있는 건가요?” 라고 묻자 직원은 대답대신 참관실의 문을 열였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커다란 유리 창문을 통해 자신의 뱃속을 훤히 열어 놓은 채 누워있는 1살 배기의 어린 영아가 눈에 들어왔다. 조그마한 몸 안의 갈빗뼈와 내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뒤편에는 성인남성의 시신이 나체로 누워있었다. 비위가 약한 몇몇 동기는 눈을 돌렸다.
아이의 사인은 수면급사증후군이라고 했다. 어려운 말로 꼬아놨지만 결국 사인을 알 수 없다는 소리였다. 후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이가 자궁에 있는 꿈을 꾸는 바람에 숨쉬기를 중단하여 발생한다는 학설이 있었다.
부검광경은 점점 더 험해졌다. 미국 드라마 CSI로 접한 장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이의 머리가 갈라지고 뇌가 드러내졌으며 안면 가죽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동기들이 하나둘 나가기 시작했다. 참관실에서 보는 광경은 그나마 견딜 만 했으나 부검실로 들어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으면 눈뜨고 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검실과 가까운 옆방엔 부모들이 있다고 했다. 사망한 아이가 집안의 장손이라 그런지 상심이 매우 크다고 했는데 만약 이 광경을 보았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관실에서 국과수 직원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국과수가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현재 행정안전부의 산하기관으로 되어 있는데 하는 업무가 경찰 쪽과 가깝다하여 행안부가 지원에 인색하다는 것이었다. 원래 공무원들이 기자들을 보면 자신들의 애로사항을 늘어놓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긴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제로 납득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부검용 장갑이 부실하여 바늘에 찔려 감염에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한번은 에이즈에 걸린 시체를 부검하다 바늘에 찔린 사례도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장비나 시설들도 열악해 우스갯소리로 ‘결핵 한번은 걸려야 진정 부검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도 나돌 정도라 한다. 또 실제로 질병에 감염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이곳에서 1년 동안 부검되는 시체는 무려 3~4천 여구. 이렇게 많은 시체를 부검 하다보면 부검의들도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 이에 대한 지원도 전혀 없는 상태다.
미국과 같은 경우는 부검의들을 위해 전담 심리학자를 두어 이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해준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험한 일을 하고 있는 국과수 직원들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 계속 지금처럼 운영한다면 언젠간 아무도 부검실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umw@fnnews.com 엄민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