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50주년작 맡은 남자, 안무가 안성수
2012.06.11 17:11
수정 : 2012.06.11 17:11기사원문
"가문의 영광입니다."
올해로 창단 50주년을 맞은 국립발레단의 기념작은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대작도 아니고,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롤랑 프티의 작품도 아니다. 한때 영화학도를 꿈꾸며 유학길에 올랐다가, 뒤늦게 이 세계에 끌려 무용계에 뛰어든 안무가 안성수(50·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사진)의 신작이다. "부담되지 않느냐"고 묻자 단호히 "그렇지 않다"며 웃는다. "뿌듯해 잠이 안 온다"는 게 그의 대답. 지난 8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국립발레단이 정통 클래식 대작을 제쳐놓고 한국 안무가의 창작 모던 작품을 50주년 기념작으로 골랐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향후 이 발레단의 지향점이 이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서양 전통 발레 못잖게 컨템포러리 창작물에 공을 들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될 이 작품의 타이틀은 '포이즈(Poise)'다. "균형을 뜻합니다. 밸런스(balance)로 하려다 어감이 약해서요."
안성수는 지난해 가을 패션디자이너 정구호(50 제일모직 전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의 서울컬렉션 패션쇼 초대 전화였다. 당시 모델들은 정씨가 디자인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시대의 의상과 장식물을 걸치고 나왔다. "몰락한 왕조의 느낌이 확 와닿았어요. 그 잔상이 계속 아른거렸습니다." 그 무렵 국립발레단 측의 안무 의뢰를 받게 되자 그는 곧바로 정씨에게 의상·무대 디자인, 연출까지 요청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골방에 틀어박혀 2주 동안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곡들을 틀었다. 그 뒤 7곡을 골랐다. 영감을 좇아 움직이고, 음악부터 고르는 건 그의 오랜 작업 스타일이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혁명과 불안, 혼돈 그 뒤 찾아오는 균형, 안정으로 잡았어요. 혁명은 어차피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잖아요. 세상 사람들의 불안은 균형이 깨지면서 생기는 감정이고요."
쇼스타코비치의 페스티벌 서곡이 무대를 연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다.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선 과거에 대한 회상에 빠진다. 발레모음곡 '볼트'에선 화려한 발레 테크닉을 뽐낸다. "여기까지가 1막입니다. 1막은 화려한 시대, 2막은 혁명과 혼돈 그리고 균형의 주제가 드러납니다. 2막의 첫 4분은 음악 없이 오브제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해요." 붉은광장 앞,무용수들의 국민체조가 시작되면 혁명의 날이 밝아 오른다. 동화같은 음악 '황금시대'는 역으로 혼란을 상징한다. 재즈모음곡 세 곡을 지나 교향곡 10번의 난해한 음이 흐르면서 '균형'의 결말이 다가온다. "외국 발레학교에선 쇼스타코비치 곡으로 발레 연습을 많이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곡이 발레와 잘 어울려요. 극 중간엔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 4개가 섞입니다. 무대가 바뀔 때, 무용수가 옷을 갈아입을 때도 바흐 곡이 나와요. 격정적인 음악 사이로 바흐 곡이 흥분을 진정시킵니다."
그의 안무는 발레와 현대무용의 기술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발레와 현대무용 사이에 경계는 없다"고 말하는 그는 "발레는 테크닉, 현대무용은 개념"이라고도 했다. 그는 무용수의 하체엔 발레 테크닉을 엄격하게 적용시키고, 상체엔 자유를 허한다. 때문에 대체로 클래식 음악에 서양식 복장, 무대를 공연 재료로 삼지만 그의 작품에선 동양적인 느낌이 난다. "작품할 때 한국적인 걸 찾지 않아요. 어차피 제가 한국인인데 제가 만들면 한국적인 거 아닐까요."
혼돈과 균형의 '포이즈' 무대는 정구호의 선명한 오브제로 시각화된다. 그는 원형 턴테이블에 이 메시지를 담아낸다. 두 사람은 17년 전 미국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안무가 안은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그간 4∼5차례 협업을 했다. 오랫동안 서로의 작품에 끌렸던 관계지만, 일이 없을 땐 3∼4년 연락 없이도 지냈다. 안성수는 인간관계를 애써 관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말수도 별로 없다. 그 많은 무용 관련 협회 어느 한 곳에도 가입해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운이 닿아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대신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주로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는 또 정구호다. "제 무용단체 안성수픽업그룹이 해외공연 계약이 잘못되면서 빚에 허덕인 때가 있었어요. 구호 선생님이 서울 남산 하얏트호텔에서 제 작품 '봄의 제전' 공연을 주선해줬죠. 그 덕분에 빚을 갚았습니다. 구호 선생님은 급할 때 그렇게 잘 등장하세요."
"좋은 안무는 무용수의 좋은 점을 잘 살리는 안무" "좋은 안무가는 무용수를, 옆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의 표정은 선량하기 그지 없었다.
나이 스물 둘, 1980년대 중반 미국 풍광 좋은 마이애미에서 영화를 공부했던 안성수는 "그 시절은 번민의 나날"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스트레칭을 위해 무용과 수업을 기웃거리다 거기서 새 인생을 찾은 그는 내친김에 줄리아드 대학에서 무용을 정식으로 배웠다.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봄의 제전''볼레로''몸의 협주곡' 등으로 이름을 날렸고 2006년 무용계 오스카상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