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의 성공조건
2014.10.28 17:32
수정 : 2014.11.12 16:17기사원문
공무원 연금은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하다. 연금 유지에 매년 수조원의 세금이 든다는데 개혁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압도적인 지지 여론은 당연하다. 박근혜정부의 최대 치적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우선 지금처럼 국민과 공무원을 대립하게 하고 저항을 유도(?)하는 방식으로는 성공이 쉽지 않다. 결과에 비해 사회적 갈등비용이 너무 클 수도 있다.
성인 군자라도 자신의 밥그릇을 뺏는 걸 순순히 지켜보고 있을까.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것은 이대로 좋다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개혁의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국민연금과의 단순비교를 통한 여론몰이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민간에 비해 적은 퇴직금, 재직 중 각종 제한에 대한 보상 등이 포함된 게 공무원 연금이다. 가입기간 및 기여금 등에서도 국민연금과 다르다. 이를 무시한 채 받는 금액만 부각한 여론전에서 공무원들은 부도덕한 집단으로 그려진다. 공무원들의 집단투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발이다.
군사작전 식으로 밀어붙이는 방법도 좋은 솜씨가 아니다. 지난달 열린 공청회는 공무원들의 집단반발로 무산됐다. 실력으로 토론을 막은 공무원노조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여론수렴의 모양만 갖추려는 정부도 비판받아야 한다.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후 형식적으로 연 공청회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 후의 행보다. 여론수렴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정부는 지난 24일 '공무원연금제도 개선 국민포럼'을 열었다. 이 포럼은 다음 달 11일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일곱 번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두 번째 포럼이 열리기도 전 새누리당이 개혁안을 발표해 버렸다. 포럼은 요식행위라는 비판을 자초하는 서두름이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의 연금관련 정보공개 약속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한때 '넛지(Nudge)'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원하는 바를 얻되 강압이 아닌, 옆구리를 찌르듯 부드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넛지의 공저자인 선스타인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 1기에서 백악관 정부규제국장으로 일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심플러(Simpler)'에서 선스타인은 넛지를 위해 특별히 정부의 정보공개를 강조한다. '정보공개'는 당연히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햇빛이 가장 좋은 살균제'이듯 투명한 정보공개만으로도 정글의 어둠을 걷어내는 넛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정보공개의 효과로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 사실이다. 국민의 정보접근이 중요하듯 관료의 정보접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관료들이 국민에게 흩어져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정부의 의사결정을 더 낫게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지식은 널리 흩어져 있기 때문에 정부의 어떤 전문가도 사회전체가 아는 것만큼 많이 알지 못한다고 노벨상 수상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말했다. 정부 관료들은 흔히 시민의 염려와 반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이 같은 선스타인의 언급은 한마디로 쌍방향 정보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을 뒤져보니 공무원 연금 개혁과 관련된 수십 편의 글을 찾을 수 있었다. 합리적 개혁의 내용, 개혁의 방법론 등에 대한 제언이 넘칠 정도로 많다.
정부는 이들을 함께 고민하는 대열에 동참시켜야 한다. 연구결과를 달랑 하나 내놓고 의견을 수렴하는 척하는 것은 공무원은 물론 야당의 동의도 받기 어렵다. 좋은 정부는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정부로 그쳐서는 안된다. 그 일을 하는 솜씨가 좋은 정부여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