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만남과 헤어짐
2014.12.09 17:26
수정 : 2014.12.09 17:26기사원문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사임을 발표했지만 아직은 현직이다. 후임자로 지명된 애슈턴 카터 전 국방부 부장관이 취임할 때까지 장관직을 수행한다. 가는 헤이글과 오는 카터 두 사람이 엇갈리는 풍경은 인상적이다. 지난달 24일 헤이글의 사임 발표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 헤이글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헤이글 장관의 공적을 치하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서로를 "존경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마지막에는 포옹 장면까지 연출했다. 그래도 나중에 홀로 백악관을 나서는 헤이글의 쓸쓸한 표정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헤이글 장관이 이슬람국가(IS) 대응전략 등을 놓고 오바마 대통령과 이견이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졌다. 백악관 외교안보팀 등 대통령 측근들과 갈등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장관이 소외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형식상은 사임이지만 헤이글이 밀려나는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이유다. 이쯤 되면 보내는 측이나 떠나는 측이나 웃으면서 헤어지긴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헤이글은 심각한 이견은 없었다는 말로 끝까지 예의를 갖췄다. 마지막을 명예롭게 장식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정국이 흔들리고 있다. 문건이 쓰레기 같은 '찌라시'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문건의 작성 경위, 비선 실세의 영향력 행사 여부, 문고리 권력 3인방, 청와대의 인사 문제 등 날마다 새로운 얘기들이 등장한다. 어지러운 국면에서 특히 현 정권 인사들이 정권과 대결 양상을 보이는 점이 눈길을 끈다.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은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 허무맹랑한 찌라시로 공식 규정한 문건에 대해 "신빙성 60퍼센트"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체부 국장과 과장을 콕 집어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라며 인사조치를 요구한 박 대통령의 말이 거의 틀림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고위 공직자가 재직 시절의 일을 까발리며 몸담았던 정권과 드잡이를 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정권이 끝난 후 회고록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두 사람이 떠난 과정을 보면 노골적인 적의가 묻어나는 행동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조 전 비서관은 상급자인 민정수석이 "당장 그만두라"는 말로 해임을 통보했다고 한다. 짐 쌀 시간도 주지 않고 "짐은 부쳐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일부러 모욕을 주려는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대통령 비서관 해임 절차로서는 황당하다. 유 전 장관은 러시아 출장 중에 경질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정성근 지명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하고 후임자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면직 처분을 받았다. 청와대가 굳이 면직 사실을 발표하는 이례적 상황까지 있었다. 고의적으로 망신 주려는 게 아니라면 일국의 장관에 대한 대접치고는 각박하기 그지없다.
현 정부의 인사 문제를 비판하는 의견은 숱하게 나왔다. 정윤회 문건의 진위를 떠나 파장이 커지는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실패로 귀결된 많은 인사 대상자는 누가, 무슨 이유로, 어떤 경로를 통해 추천한 것인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수첩인사'로 상징되는 비선이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파동을 보면서 현 정권에서 사람을 쓰는 과정뿐 아니라 해임 과정도 문제가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헤어짐의 미학까지 운운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예에서 보듯 일종의 의식(儀式)처럼 자부심과 명예를 지켜줄 수는 없을까. 흔히 공직자 인사권을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한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통치권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수준 미달의 사람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헌신짝 버리듯 사람을 내치는 것도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