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에 눈물 마를 날 없어도 그래도, 그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2014.12.30 17:18
수정 : 2014.12.30 17:18기사원문
파출소서 닥터헬기까지 1년간 40차례 전국 누벼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및 공기업 근로자들은 '철밥통', '신의 직장' 등으로 불린다. '국민의 혈세로 돈 잔치를 벌인다'며 과감한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살기가 이렇게 어렵다. 올해는 세월호 침몰 참사, 공무원연금 개혁 등으로 더욱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공복(公僕)들도 참 많다. 이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 사회가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이낸셜뉴스는 올해 신년기획으로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을 내놓았다. 지난 1월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대림파출소를시작으로 이달 18일 경북 안동병원 닥터헬기까지 40차례에 걸쳐 전국 곳곳을 누볐다. 우리가 낸 세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얘기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한 달 평균 3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국선전담 변호사를 비롯해 △종자독립국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원 △대한민국 하늘길의 안전을 책임지는 항공교통센터 관제사 △선거 유세현장을 누비는 선거관리위원회 공정선거감시단 △60여년 전 조국을 지킨 영웅들의 유해를 찾아 지뢰밭을 걷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의 엄마 역할까지 대신하는 어린이병원 간호사 △광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하 1300m 막장을 마다하지 않는 광산보안관 등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 주인공이었다.
지난 8월에는 서울 영등포구청 환경미화원 이황용씨(47)와 함께 영등포역앞을 청소했다. 불과 500m 남짓한 대로의 한 쪽을 치우는 일이었지만 새벽 2시30분 손에 쥔 빗자루를 아침 7시까지 놓을 수 없었다. 인근 나이트클럽에서 뿌려댄 명함과 시민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던진 담배꽁초들이 울화통을 치밀게 만들었다. 이씨는 4개월이 지난 지금도 하루에 두 차례 영등포역앞을 깨끗하게 치운다.
험한 일이지만 자부심은 강했다. 이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환경미화원임을 숨기지 않을 뿐더러 친구들과 기러기를 자나가도 반갑게 인사하고 새벽에 나와 청소를 돕기도 한다고 했다. 이씨는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이 응원해준 덕분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같은 달 서해 백령도 가는 길에 위치한 인천해양항만청 소속 소청도 등대를 찾아 등대관리원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한 달에 22일을 근무하고 주말을 몰아서 쉬는데 독자의 상당수가 '땡보직(편안한 보직)'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등대관리원의 일상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채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고 여름에는 잡초 제거, 겨울에는 눈치우기 등 항로표지관리소 전반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혼자서 긴긴 밤 등대를 지키는 일은 마냥 쉬워 보여도 실제로는 여간 고된 것이 아니다.
강원 영월우체국 김민규 집배원(37)에게서는 공무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한편 역할의 변화에 주목하게 됐다. 시골에서는 집배원이 택배업무까지 겸하고 있는데 다른 택배업체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우체국에 물품을 다시 맡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공무원인 우체국 집배원은 배달을 해주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전화나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편지를 대신하고 있지만 시골의 집배원들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사회복지서비스와 연계, 복지 대상자를 발굴하고 이들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희대 최연식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일부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등으로 공직사회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다"며 "하지만 뒤에서 말없이 열심히 노력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