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을 대하는 자세

      2015.03.03 17:05   수정 : 2015.03.03 17:05기사원문

지난해 7월 국회 정무위원회 주최로 김영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질문과 토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원들의 최종 관심이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의원들이 검찰 등 수사기관의 손아귀에 놓이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의원들의 업무성격(?)상 이런저런 청탁이 주를 이루는데 '부정청탁금지'법을 만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우려였다.

진술인들에게 집중된 질문의 하나는 적용대상 확대에 관한 것이었다.
법안 심사과정에서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에게도 법을 적용하는 안이 나온 때문이었다. 진술인으로 참여한 나는 의원들의 질문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공직자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포함시키는 것은 법의 본래 취지에 어긋난다.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원처럼 공적 권한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규율할 이유가 없다. 적용범위가 확대될 경우 각계의 반발로 법안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의원들의 집요한 질의가 이어졌다. 작은 지방자치단체 문화센터 하급직원들도 법이 적용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은 말할 것도 없다는 논리였다. 솔직한 느낌은 의원들이 이 법을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원들은 내가 사립학교 교원이기 때문에 적용대상 확대를 반대하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계속된 추궁과 질문에 살짝 짜증이 난 나머지 이렇게 대꾸했다. "논리적, 법리적으로는 분명히 반대한다. 그러나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하지 않을 경우 입법을 하지 않겠다면, 적용대상에 넣어도 좋다."

공청회 석상에서도 반대의견이 더 많았기에 현실화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월 정무위원회는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하는 안을 통과시켰고, 최종 법률안도 같은 결론이 났다. 반면 본래 주된 적용대상이었던 국회의원들은 빠지게 되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간 최종 합의된 '김영란법' 5조 2항은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기준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사업.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하여 제안.건의하는 행위'에 대해선 이 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청회 석상에서 의원들의 추궁에 밀려 결과적으로 일종의 찬성 의견을 제시한 게 의원들의 전략에 말려든 셈이다. 나의 의견으로 인해 적용대상 확대로 결론 난 건 물론 아니다. 본래 의원들의 의도가 물타기였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의 반발로 입법단계에서 무산되면 좋고, 헌법소원 등에 의해 법의 효력이 상실되어도 좋다는 것이다. 여론에 밀려 법을 억지로 만들려는 기색이 역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솔직히 말해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김영란법과 관련해서 얼마나 억울한 일이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국회의원 등 정치권 비리를 통제하는데 김영란법이 무력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법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끈끈한 관계에서 '우리는 남이다'로 180도 다른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법이다. 하지만 오랜 진통 끝에 애써 만든 법이 근원적인 정치부패 차단에 별다른 실효성이 없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잠시만 마음을 놓아도, 한눈을 팔아도 문제를 바꿔치기하는 데 명수들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통과가 끝이 아닌 이유다. 실효성이 있는지, 엉뚱한 대상을 규율하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문제가 있다면 추후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그게 김영란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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