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을 대하는 자세(2)
2015.03.17 17:03
수정 : 2015.03.17 17:03기사원문
과문한 탓인가. 법이 통과된 다음 날부터 개정 얘기가 나오는 경우는 생전 처음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 스스로의 주장이다. 어리둥절하다. 이른바 김영란법 이야기다. 법 시행을 1년6개월 유예하는 것도 금시초문이다. 1년도, 6개월도 아니라 1년 6개월?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였다.
법전을 펼쳐 법률 몇 개를 살펴보니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로부터 시행'하는 부칙이 대부분이다. 간혹 3개월이나 1년의 유예기간도 있긴 하다. 어쨌든 1년6개월은 생뚱맞다. 하지만 2016년 9월쯤부터 시행된다는 것을 깨닫자 국회의원들의 깊은 뜻(?)에 무릎을 치게 된다. 현재 19대 국회가 끝난 후 적용되도록 한 것이다. 여론에 밀려 법을 통과시키기는 했지만 일단 소나기를 피하자는 묘수를 낸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다. 현직 국회의원 모두가 내년 4월 국회 재입성을 포기한 것은 아닐 텐데.
언론의 반발을 유도한 것도 노련하다. 많은 언론이 언론자유 위축 가능성을 특히 우려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유 있는 항변이지만 문제가 있다. 우선 뒷북치기다. 처음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등을 끼워넣었을 때 비판을 제기했어야 한다. 나아가 이런 논란이야말로 국회의원들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 나온 일부 의원의 발언은 이를 짐작게 한다. 기자협회 등에서 반대가 없지 않느냐는 게 그것이다. 강력한 반대의견을 내주어야 법안이 무산될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언론이 김영란법 논의의 초점을 언론자유 위축에 맞추는 것은 따라서 초점을 잘못 잡은 것이다. 아니 의도적으로 그런 논란을 피해야 한다.
언론도, 사립학교 교원도 부패 문제가 있다면 적용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위헌 시비는 나중에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겠다. 그러니 공직자 부패를 차단하려는 애초 김영란법 취지에 맞게 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게 더 시급하다. 국회의원 자신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선출직 공무원과 정당.시민단체 등에 대한 예외규정을 둔 부정청탁 관련조항을 우선 바꾸게 해야 한다. 앞서 말한 법 시행 유예기간도 3개월 혹은 6개월로 줄여야 한다. 아예 빼버린 '이해충돌 방지' 조항도 입법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지적한 것처럼 국회의원을 브로커로 만들 가능성이 있는 등 반쪽 법안을 만든 주범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대법원에서는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검사가 변호사로부터 벤츠 승용차뿐 아니라 전세 아파트, 다이아몬드 반지, 고급 시계, 모피 코트, 명품 핸드백, 골프채 등을 받았지만 '사랑의 징표'라는 이유였다. 오래전 유야무야된 스폰서 검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공직자의 직무와 무관하고 대가성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받아 재판에 넘겨진 판사도 돈은 받았지만 대가성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언젠가 한번 써먹기 위해 평소 밑밥을 뿌려두는 소위 스폰서의 속성을 몰라서는 아닐 것이다. 현행 법의 허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많은 사람이 개탄하듯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사건들이다.
이제라도 김영란법은 속히 발효되고 더 강력한 효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취재원과 기자의 식사는 김치찌개(!) 메뉴로 단일화하면 된다. 그것도 문제가 되면 각자 내면 된다. 그것도 문제가 있으면 아예 밥을 안 먹어도 괜찮다. 사립학교 교원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그것이 김영란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