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제네시스가 있었다"
2015.11.10 17:09
수정 : 2015.11.10 17:09기사원문
현대자동차가 고급화 전략을 추진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제네시스 브랜드로 현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고급차 시장을 공략한다는 내용이다. 렉서스와 인피니티로 대성공을 거둔 도요타, 닛산 등 일본 자동차 회사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렉서스: 세계를 삼킨 거대한 신화'나 '도요타 DNA' 등의 책에서는 렉서스 등의 성공요인을 비슷하게 분석하고 있다.
벤츠와 BMW도 성공하지 못했던 속도와 연비, 정숙성의 세 마리 토끼를 잡아낸 최고의 기술력이 우선 꼽힌다. 완벽한 성능, 혁신적 디자인, 철저한 서비스 등은 공통적인 성공요인이다. 마케팅에 대한 찬사도 있다. 1989년 첫선을 보인 렉서스 LS400의 '보닛 위 와인잔' 광고가 그것이다. 주행시험장치 위에 올려진 자동차 보닛 위에 와인잔을 쌓아올린 후 속도를 시속 140㎞까지 올렸지만 와인 잔이 미동도 하지 않는 화면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미국에 있던 나도 상황을 관심 있게 지켜 본 바 있다. 일본에 대한 개인감정과는 달리 '고장 없는 일제차'를 선호하던 터였다. 일본차들의 선전을 부러움 반 질시 반으로 유심히 볼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한 관찰자 입장에서 전문가들과는 다른 측면의 요인도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가 도요타를 이기는 날'에서 고바야시 히데오 교수가 말한 것처럼 오른쪽 눈으로는 해당 산업이나 기업의 동향을 분석하면서, 왼쪽 눈으로는 한국과 세계라는 글로벌한 시각에서 분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렉서스의 데뷔는 일본과 일본문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의적 평가가 상승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일본식 정원은 미국 대도시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꽃꽂이, 다도 등과 함께 스시가 상류층 고급요리로 성가를 높일 때였다. 이미 일본차에 대한 성가도 높았다. 일본차는 고장 없고 중고차 값도 좋은, 중산층의 최상의 선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도요타와 닛산은 물론 혼다, 마쓰다, 미쓰비시 등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프리미엄 자동차도 렉서스, 인피니티와 혼다의 애큐라까지 비슷한 시기에 내놓음으로써 화제를 모으고 일종의 경쟁관계를 형성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이에 비추어 보면 현대는 불리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상승기가 아니고 침체기를 지나고 있다. 국가 이미지가 하락 추세다. 함께 뛰는 다른 자동차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에서 통하는 한국의 프리미엄 브랜드는 삼성, 엘지 등의 전자제품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백사장에서 조선소를 만들고, 허허벌판 맨땅에서 제철소와 자동차 회사를 만들어 낸 우리다. 현대차의 도전은 그때에 비하면 오히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는 그런 면에서 시사적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양인들은 감히(?) 자동차에 제네시스라는 이름을 붙일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양인에게 익숙한 성경의 첫 장인 창세기의 영어명이 제네시스이기 때문이다. 이름처럼 제네시스가 우리에게 새로운 세기를 여는 브랜드였으면 좋겠다. 현대차만을 위한 기원이 아니다. 다음 세대에 무엇을 먹고 살지 고민할 정도로 우리의 모든 주력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는 현실이다. '맨땅에 헤딩'하던 우리의 도전정신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탄식도 나온다. 제네시스가 렉서스를 능가하는 성공신화를 씀으로써 우리도 다시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렇게 야심찬 구호를 채택하면 어떨까 싶다. "태초에 제네시스가 있었다(In the Beginning, there is Genesis)."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