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 청문회법의 성공조건
2016.05.24 17:13
수정 : 2016.05.24 17:13기사원문
상시 청문회? 좋다. 상임위 활성화? 그것도 좋다. 국회가 일을 많이 하겠다는 걸 탓할 이유는 없다. 일 안하는 식물국회라고 늘 타박하지 않나. 지난해 국회법 파동과 이번 사안은 결이 다르다. 행정부의 법률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직접 관여하게 한 것은 다분히 위헌 소지가 있었다. 이번 국회법 개정은 '소관 현안'의 경우 쉽게 청문회를 열 수 있게 한 것이다.
쉬운 청문회는 필요하기도 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좋은 사례다. 검찰 수사가 끝나도 공무원을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행정부 관련자들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형사책임 못지않게 중요하다. 앞으로 유사한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사보다 더 긴요하다. 면피에 급급한 행정부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점을 밝혀낼 리 없다. 바로 이런 때 소관 상임위가 청문회를 열 수 있어야 한다. 행정부의 정책과 집행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책을 마련할 책무가 국회에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국회 청문회의 나쁜 기억만 있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청문회를 상시적으로 하겠다면 나부터 반대할 수밖에 없다. 정책의 본질 대신 정부를 흠집 내기 위한 정치공세 목적으로 청문회를 이용하는 게 어제까지의 모습이었다. 장관이 안 나오면 회의를 못하겠다는 식의 권위주의도 팽배하다. 호통치고 삿대질하고 망신 주는 게 국회의원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기업인을 '불러 조지는' 이유가 은근한 뒷거래를 위한 것임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이런 고질병을 상시 청문회 제도하에서는 고칠 수 있을까. 솔직히 전망은 비관적이다. 다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야권은 이 문제를 우선 청문회 대상으로 꼽는 듯하다. 사안의 중대성으로 보아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책 청문회를 여는 건 바람직하다. 청문회가 열리면 차분하게 정책의 잘잘못을 따지고 대안을 모색하는 장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야당은 무조건 장관 출석을 요구할 게 틀림없다.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장관을 위해 수십명의 공무원이 줄줄이 따라 나올 것이다. 야당은 우선 댓바람에 사과부터 하라고 장관을 윽박지를 것이다. 지금도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보면 대통령 사과 여부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여당은 어떨까. 허가와 판매가 본격화된 게 김대중 .노무현 정부 아니냐고 반박할 것이다. 화학물질의 적정 관리라는 정책 실패의 본질은 사라지고 의원들끼리 삿대질과 고함으로 시간을 때울 것이다. 대선이 가까울수록 상대 흠집 내기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은 애들 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야당의 일만도 아니다. 새누리당도 야당 시절인 2005년 최경환 의원 등이 청문회 활성화법을 냈다는 것 아닌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고 해서는 안 된다. 행정부가 걱정하듯 국정마비가 우려된다면 여야가 함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당시 개정안에 담은 것처럼 국회 상임위 청문회를 입법.감독.조사.인사청문회 네 가지로 세분하고 관련 절차를 명백히 규정해 남용 여지를 없애야 한다. 상시 청문회가 현실화된다면 대정부 질문과 국정감사는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 상시 국감 제도에는 이미 여야가 공감한 바 있지 않은가. 18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이 19대 국회를 어렵게 만든 경험을 했다. 19대 국회 마지막에 통과된 상시 청문회법이 20대 국회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지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평행이론이 될지, 타산지석이 될지 정치권의 대응에 달린 것이다. 실패에서도 배우지 못하면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노릇 아닌가.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