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거위에서 기러기로
2016.08.16 17:09
수정 : 2016.08.16 17:09기사원문
'거위는 가축화된 기러기다. 헤엄은 잘 치지만 날지는 못한다. 낯선 사람을 보면 요란하게 울어대고, 밤눈이 밝아 훌륭한 파수꾼 노릇을 한다.' 거위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얘기가 나온다. 갑자기 거위에 관심이 쏠린 것은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 때문이다. 이 대표의 휴대폰 컬러링이 7년째 '거위의 꿈'이란 노래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노랫말처럼 이 대표는 '남들이 비웃을 때' 혼자서 꾸던 꿈을 끝내 이루었다. 본인의 말마따나 호남 출신, 무수저, 17계단이라는 '벽을 넘어' 보수정당의 수장이 된 것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탄생은 거위가 날아오른 것에 비견할 만하다. 헤엄은 잘 치지만 날지는 못한다는 게 정설인 거위가 물을 박차고 공중에 떠오른 것이다.
새누리당 간판으로 호남 지역구 재선 의원이 된 것과 함께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요인은 순전히 이 대표의 탁월한 개인기 덕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개인택시 기사들을 만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열정과 성실함이 바탕이 되었다. 마을회관에서 자고 주민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소탈함도 한몫했을 터이다. 대표 선출 과정에서는 '근본 없는 놈을 발탁해 준'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날아오른 이 대표의 과제는 무엇일까. 본인의 말처럼 박근혜정부의 성공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권 재창출이 가장 중요하다. 이 같은 이 대표의 향후 행보를 생각하며 거위의 정체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가축화된 기러기가 거위라면 하늘로 날아오른 거위는 거꾸로 기러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기러기는 겨울이 되면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날아간다. 기러기들이 브이(V)자 대형을 지어 하늘을 나는 것은 앞에서 나는 새들이 날개를 저으면 뒤에서 따라오는 새를 위한 상승기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브이자 대형으로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은 혼자 날 때보다 71퍼센트를 더 멀리 날 수 있다고 한다. 브이자 대형은 기러기들이 길도 잃지 않고 힘도 아낄 수 있도록 해주는 비밀병기인 셈이다. 이 대표가 이제 거위에서 기러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대표는 보좌진에게 맡기기보다 직접 일을 챙긴다고 한다. 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혼자 배낭을 메고 국민들 속으로 뛰어든 것에서 단적으로 그의 스타일을 알 수 있다. 수없이 많은 벽을 무너뜨리면서 지역, 학벌, 가문 등의 도움이 아닌 개인적 역량으로 돌파해 왔다. 지금까지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발버둥치는 거위에서 벗어나 무리를 이끄는 기러기가 돼야 한다. 우려되는 점은 이 대표가 여전히 나만의 실행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한시적 완화방안을 이끌어낸 과정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누진제 완화책을 건의하기 전 혼자 한전 사장도 만나고 관계자들과도 논의했다고 한다. 은근히 실천력을 과시하는 듯하다. 인사 문제를 직접 발표하는 것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다.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대선주자 경선은 이른바 '슈퍼스타 K'처럼 공개오디션 방식을 채택할 것이라고 한다. 신선한 아이디어지만 당내 대선주자들이 순순히 따라줄지 알 수 없다.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한 거위가 혼자만 날갯짓을 해서는 멀리 가기 어렵다. 힘에 부치거나 세찬 바람이 불면 언제 다시 물로 추락할지 알 수 없다. 다른 기러기들과 함께 상승기류를 만들어 더 멀리 갈 수 있는 대형을 지어야 한다. 거위는 원래 기러기였다는 것 아닌가.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