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잡으려 "통신비 낮춰라".. 자율적 인하경쟁 막아

      2016.09.21 17:50   수정 : 2016.09.21 17:50기사원문

"1000원짜리 과자를 국회의원들이 나서 500원으로 할인해주겠다고 하면 싫어할 국민이 있겠는가? 국회가 과자값을 절반으로 깍으면 과자 산업은 맛좋은 새 과자를 개발해낼 여력이 남겠는가? 민간기업들의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 가격을 일부 국회의원들이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결국 시장과 산업을 붕괴시키는 일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해마다 국회의 통신요금 인하 압력이 지속되고 있는데 대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한 전문가의 지적이다. ICT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되는 통신인프라 고도화와 기술개발에 대한 전문적 연구는 뒤로 미룬채 순간적으로 국민들의 표를 얻을 수 있는 통신요금 인하를 정치적 성과로 자랑하는 국회에 대한 비판이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통신요금 인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는 26일부터 시작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통신요금 문제가 도마위에 오를 단골메뉴로 예정돼 있다.

■5G 상용화 경쟁 치열한데 국회는 통신비 인하 압력만

2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이동통신3사는 오는 2018년 세계 최초 5세대(5G) 이동통신 시범 서비스, 2020년 세계 최초 상용 서비스를 위해 막대한 투자 집행을 앞두고 있다. LTE 투자가 마무리된 지난 2014년과 2015년에는 투자비가 다소 줄었지만, 2017년과 2018년에는 지난 2012년 LTE 서비스가 시작될 당시 8조원이 넘는 투자를 집행했던 것과 비슷한 규모의 막대한 투자비를 집행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지난 수년간 막대한 투자비를 바탕으로 한국을 세계 최고의 통신강국으로 만들었다.
연평균 7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바탕으로 한국은 전세계에서 롱텀에볼루션(LTE) 속도가 가장 빠르고 전국 어디서나 LTE를 이용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

통신사들의 지족적 투자의 원천은 당연히 통신요금이다. 적정한 수준의 통신요금을 기반으로 통신 인프라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 압력이 거세지면 결국 투자가 줄어 글로벌 통신사들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5G 경쟁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 자체가 후퇴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발 통신비 인하 압력, 요금인하 경쟁 무력화

국회의 과도한 통신요금 인하 압력은 결국 통신시장의 기능을 무력화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통신시장은 이미 민간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정부가 요금 결정과정에 기어들 틈이 없다. 그런데도 국회가 정부를 압박해 통신요금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게 지난 2007년 이후 10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에서는 "민간 경쟁 시장인 통신시장은 기업간 경쟁에 의해 요금이 결정되는게 원리인데 국회의 개입이 길어지다보니 기업들은 요금을 경쟁수단으로 보지 못하게 됐다"며 "경쟁을 통해 요금인하 요인이 생기더라도 국감에서 통신요금 인하 압력을 받을 것에 대비해 요금경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결국 국회가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통신시장에 개입하는 일이 장기화되면서 통신시장의 경쟁을 무력화킨 셈이다.

■통신강국서 몰락한 유럽, 반면교사 삼아야

전문가들은 유럽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세계 통신시장을 주도했던 유럽은 정부의 강력한 요금인하 정책으로 투자 동력을 잃었다.

지난 2008년 이후 유럽 통신사들의 전체 매출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정부가 통신요금 인하를 위해 과다한 사업자들을 시장에 진입시키면서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고 있는 것. 결국 투자 동력이 사라진 유럽 통신사들은 차세대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를 축소했다. 영국과 독일 등 과거 세계 통신시장을 선도했던 국가들은 현재 LTE 커버리지가 인구의 절반도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결국 유럽의 통신 소비자들은 싼 요금제를 얻은 대가로 질좋은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 정부도 규제 중심의 통신정책을 진흥 중심으로 전환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5월에 EU내 시장 규제장벽을 허물고 28개국의 단일시장화를 추진하는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Digital Single Market Strategy)'을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차세대망 도매요금 규제를 유예해주고 비싸게 할당하던 주파수도 적정가격으로 할당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유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유럽 사례가 주는 교훈은 요금인하와 투자촉진이 적절히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라며 "최근 잇따라 논의되고 있는 통신요금 인위적 인하 정책인 30% 요금할인 제도 도입, 기본료 폐지 등은 오로지 요금인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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