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도 헷갈리는 김영란법 "직무관련성? 우리도 몰라요"
2016.09.28 17:35
수정 : 2016.09.28 17:35기사원문
#2. "일단 한동안은 무조건 조심하세요." 대형로펌 소속 B변호사는 최근 김영란법 대처방안을 묻는 기업고객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핵심은 '부정한 의도'가 있는지 여부인데 판단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으니 법원의 판례가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B변호사는 "불편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3. 검찰도 사정은 비슷하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관련 기준과 방침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라면서도 "내부적으로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 안 되니 일단 무조건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밝혔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28일부터 전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법 적용을 놓고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김영란법이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지만 처음 시행하는 만큼 판례가 없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라는 판검사와 변호사들조차도 난감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법원이 27일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공개한 '청탁방지법 Q&A'도 결국 '애인·가족 외에는 무조건 더치페이하라'는 것이어서 궁금증 해소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대검찰청 역시 이날 관련지침을 정해 일선에 내려보냈지만 '판례를 기다려보자'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직무관련성' 어디까지?
논란의 핵심은 '직무관련성'이라는 규정이다. 넓게 보면 한없이 넓을 수밖에 없고 좁혀 보자면 기존 제도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직무관련성을 담임교사와 학부모처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 한정할 것인지, 변호사와 검사처럼 '언젠가는 이해관계가 생길 수도 있는' 잠재적 관계까지 확대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직무관련성의 범위를 좁게 해석할 경우 기존 뇌물죄 등에서 적용되는 '포괄적 대가성'의 범위와 비슷해질 수 있어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 율촌의 김기영 변호사는 "가장 많이 논란이 되는 것은 직무관련성의 개념"이라며 "광범위하게 해석하다 보면 사회생활 업무와 관련해 접하는 모든 상황들을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뇌물죄의 직무관련성 기준을 그대로 사용할 것이냐, 김영란법의 목적에 맞는 직무관련성 개념을 법원이 세워줄 것이냐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외조항도 애매
법조계는 김영란법 예외규정을 둘러싸고도 해석상 논란이 일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란법은 원활한 직무 수행이나 사교.의례, 부조 목적으로 제공되는 3만원 이하 음식물, 5만원 이하의 선물, 10만원 이하의 경조사비는 허용해 금품 수수에서 예외조항을 뒀다.
그러나 법조계는 '원활한 직무수행의 범위'라는 말 역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예외라면 판단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게 선이 그어져야 하는데 예외사유조차도 추상적인 용어를 쓰다 보니까 실제 현장에서 예외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정상적 사회활동까지 너무 제약하는 게 아니냐는 식의 불편한 시각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익위 '말바꾸기' 혼선 가중
김영란법 주무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의 말바꾸기도 관련업계의 혼선을 가중시키고 있다. 권익위는 당초 배포한 설명자료 등을 통해 공직자 등이 경조사비 가액기준(10만원)을 넘어 15만원의 경조사비를 받는 경우 15만원 전체를 반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권익위는 가액기준을 초과하는 금액인 5만원만 반환하면 된다고 말을 바꿨다.
국회의 이른바 '쪽지예산' 관행이 법 적용 대상인지를 놓고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권익위는 "공익적인 목적의 쪽지예산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면서도 "특정 사업을 겨냥해서 배정된다면 부정청탁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공익적 목적의 쪽지예산과 특정사업을 겨냥한 쪽지예산을 구분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권익위가 주무부서라는 이유로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법 시행 초기에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은 이해가 가지만 규제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조상희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