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강제입원’ 더 까다로워진다

      2017.05.24 17:14   수정 : 2017.05.24 22:05기사원문

#.지난 2013년 11월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A할머니는 부동산 담보대출 등 재산상 문제가 생긴 딸 B씨의 동의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우울증 치료 경력이 있다는 이유였다. 이듬해 1월 A할머니는 병원 내 공중전화로 이웃주민에게 구조를 요청했고, 서울중앙지법에 '인식보호구제청구'를 했지만 다음날 딸 B씨의 요청으로 또다시 강제입원됐다.

A할머니는 퇴원 후 다른 병원에서 심리검사를 받았지만 어떤 정신병적 문제도 드러나지 않았다. A할머니는 억울한 사정을 유발한 정신보건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했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정신질환자를 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등의 인권침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재산 다툼이나 가족 간 갈등을 법의 힘을 빌려 경증 정신질환자를 중증으로 둔갑시켜 강제로 입원시키는 형태다. 국내에서 정신질환으로 인한 입원의 67%가 강제입원 형태이고, 매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신질환자 인권침해와 관련해 권고 등 인용 결정을 내리는 건수는 80여건에 달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너무 쉬운 강제입원 절차가 원인으로 꼽힌다.

국회와 정부는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 상당부분이 강제입원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건강법에 있다고 보고 20년 만에 관련법을 전면 개정했다. 정신건강법을 개정한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를 훨씬 까다롭게 하고,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30일부터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이 법은 강제입원 시 전문의 1인 진단으로 입원했더라도 2주 이상 유지하려면 다른 정신의료기관 소속 전문의 진단을 추가로 받도록 했다. 또 모든 강제입원은 1개월 이내 정신과 의사, 법조인, 보호자, 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입원 적합성 여부를 심사받도록 했다. 다만,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1년 동안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에 정식 도입된다. 강제입원 시 6개월에 한 번 입원기간 연장을 심사하던 것을 초기에는 3개월 간격으로 심사하도록 기간을 단축했다.

정신질환은 '독립적 일상생활을 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정신질환자의 법적 의미를 축소했다. 우울증 등 경증 환자는 장례지도사, 말조련사, 가축인공 수정사, 화장품제조판매업 등의 자격 취득도 허용한다.

정신건강 증진 및 복지서비스를 위해 고용.교육.문화서비스 지원을 담은 정신질환자의 복지서비스에 관한 규정도 신설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20여년 만에 전면 개정되기 때문에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기까지 현장의 부담이 있을 수 있어 현장과 소통하며 협의를 통해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법 시행 전부터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는 것은 부담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요건이 엄격해지면서 치료의 연속성 저해, 퇴원 대란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정신질환자의 정신병원 입원을 강화하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에 대한 의학적 치료에 대해 당사자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주요 선진국도 유엔 기준에 부합하는 입원제도를 시행 중이다. 미국, 독일, 프랑스는 법원 심사를 거치도록 한다.
호주, 일본 등은 독립적인 기구의 심사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중 프랑스와 일본은 입원 필요성에 대한 전문의 2명의 진단 요구도 받고 있다.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의 정신보건법은 정신장애인들이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친다면 개정된 법률안은 주거문제, 직업문제 등 사후까지 고려해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이 확대됐다"며 "정신장애인들의 인권보호 차원에서는 진일보한 법안이지만 아직 발달장애인과 관련된 법안보다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ssuccu@fnnews.com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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