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고 올리고♪” 가로정비 단속 뜨자… 노량진 지하도에선 무슨 일이

      2017.09.27 06:00   수정 : 2017.10.10 18:08기사원문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도매시장과 노량진로를 잇는 지하도, 동작구청은 이곳 상인들과 ‘비공식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다. 2015년 10월 노량진 수산시장이 현대화 작업을 하면서 시장은 현대식 건물로 이전했고 무질서했던 이곳은 가로 정비하면서 구청은 ‘노란선’을 그었다.

노란선이란 이곳의 노점 상인들이 좌판을 벌일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종의 ‘영업 허가지역’이다.

지하도 약 6m 폭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적재할 수 있는 공간은 약 1.5m. 최소 40년 이상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한 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전해주면서 시민들의 통행 안전을 지키려는 궁여지책이다.

■ 단속 뜨면 올리고, 가면 다시 내리는 노량진 지하도의 도돌이표
“올리고 올리고♬”. 22일 오전 9시 36분 지하도에 동작구청 건설관리과 가로정비 단속 직원이 모습을 나타내자 노점 상인 한 명이 신호를 주듯 노래를 불렀다. 파란 조끼를 입은 남성 직원 넷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가 곧 대치하는 사뭇 긴장감을 주는 순간이다. 노점 상인은 채소나 과일이 든 바구니 따위를 좌판대 위로 올렸다.
그리고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직원이 사진을 찍어 기록했다.

“할머니 선 넘 오시면 안 돼요!” 직원이 말했다. “알았어”라고 한 상인이 답했다. 이미 이곳 상인과 가로정비 직원의 안면은 익숙해 보였다. 단속은 최근 들어 더욱 잦아졌다. 구청은 23일~24일 양일에 걸쳐 시장에서 열리는 ‘제6회 도심 속 바다축제’를 맞이해 시장으로 가는 가장 큰 길목인 이 지하도를 정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60대 이상의 할머니 상인들은 노란선을 잘 지키지 않았다. 기자가 하루 전 이곳을 찾았을 땐 일부 상인이 선을 넘어서 채소와 과일 등이 담긴 물건이 나와 있었다. 상인들은 단속이 뜨는 시간인 하루 세 차례 정도 시간에 맞춰 물건을 위로 올렸고 직원이 가면 다시 물건을 내려놓았다. 또 얼음이 녹은 물을 길에 버리는가 하면 곳곳엔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이곳에서 40여 년 장사를 했다는 한 상인은 “우리가 (구청의) 말을 안 들어서 그래”라면서 “노란선 넘지 말라는데 너무 좁아. 우리도 어쩔 수 없어. 먹고살아야지”라고 말했다.



■ '강제 대집행 안 한다'는 동작구청의 꿈
이 지하도에는 도보와 자전거, 오토바이가 뒤섞여 사람이 다닌다. 지하도 입구는 버스 정류장과 9호선 노량진역이 맞닿아 있어 유동 인구가 크다. 이날 오전 9시 45분부터 10시 45분까지 유동인구를 세어 보았다. 1시간 동안 지나다닌 인구는 총 792명, 이 중 오토바이가 28대다. 거의 2분에 한 대꼴로 오토바이가 다녔다.

오토바이와 자전거에 사람까지 뒤섞여 다니고 거기에 노점 상인의 좌판까지 겹쳐 길이 좁아지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지속되고 있다. 구청에 따르면 이곳은 민원 상습 제기 지역으로 매주 3~5건 이상 민원이 오고 있다. 이 날도 길을 가던 시민과 상인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시민은 길을 불편하게 만든다며 상인에게 지적을 했고 상인은 무슨 상관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했다. 결국 욕설이 오가다 심한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찰나 가로정비 직원이 둘 사이를 무마시켰다.

지난 20일엔 한 시민이 SNS에 가로정비 단속 장면을 촬영한 사진과 글을 게재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는 “동작구청이 보낸 용역깡패가 들이닥쳤다”라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점상 할머니들을 강제로 몰아냈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트윗은 3만여 개가 넘는 알티가 일어나면서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직원이 강제로 철거하는 듯 보이는 사진은 실제로는 한 상인이 계속해서 노란선 밖으로 상품을 진열하자 이를 노란선 안으로 옮기려고 나서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끊임없는 잡음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시민들의 의견은 반으로 나눴다. 시민들은 60살 넘은 할머니의 삶의 터전을 보전해 줘야 한다는 의견과 강력한 공권력으로 밀어부쳐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동작구청 건설관리과 유경욱 주무관은 “하루에 몇 차례씩 이곳을 순찰하고 있다”면서 “구청에서는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통행 안전을 위해 상인들이 노란선 안쪽에서 예쁘게 진열해 장사를 하길 유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하지만 강제적으로 행정 대집행은 안 한다. 다만 계도와 인식 개선을 지속해 지하도가 깨끗해지도록 만드는 게 구청의 꿈이다”라고 말했다.



■ 인도에 오토바이가 버젓이 다녀도 손쓸 수 없는 이유
이 길에 현행법상 오토바이가 다닐 수 없는 인도임에도 오토바이가 수없이 다녔다. 가로정비 직원에 따르면 오토바이는 수산시장 관계자들로, 같은 사람이 하루에 많게는 5번 이상 이 길을 지나다닌다고 했다.

오토바이가 수산시장을 가려면 두 개의 길이 있다. 이 지하도와 수산시장 고가 차도다. 하지만 수산시장 고가차도는 상습 정체구역으로 이 길보다 약 10분 이상 더 소요된다. 자연히 이 길로 다닐 수밖에 없는 게다.

그러나 이 지역 관활 동작경찰서 또한 오토바이의 인도주행이나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 등의 교통법규 위반행위를 단속하기도 힘들다. 이 또한 상인들의 생계가 걸려있는 문제다 보니 무턱대고 가로막기 어렵다. 결국 시민의 불편과 안전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길거리 노점 정비사업은 행정 당국과 상인들 사이에 큰 갈등을 빚어왔다. 비단 동작구 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 북문 노점, 전주시 남부시장 매곡교 노점 등에서 행정 대집행에 따라 강제 철거했다. 그리고 대구시 수성구 목련시장에선 오는 추석을 쉰 이후 강행을 예고했다.
이때마다 행정 당국과 노점 상인이 격한 실랑이를 벌인다.

최근 노량진 수산시장은 외국인의 인기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지하도에서 만난 홍콩에서 온 20대 관광객은 “이런 모습 또한 한국 문화의 일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과연 이 모습이 국제적인 시장에 걸맞은 자랑스러운 한국 문화의 일부일까?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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