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으로 세금내고 디지털 이민까지

      2018.01.03 13:00   수정 : 2018.01.03 17:29기사원문
【도쿄=전선익 특파원】“스위스 북부의 크립토밸리(Crypto Valley) 추크(Zug)에서는 세금을 비트코인을 내실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스위스. 스위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프라이빗뱅크(PB)입니다. 전 세계 부유층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스위스에 계좌를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은행의 계좌 정보를 본인이 아닌 타인에게 함부로 넘겨주지 못하게 돼 있던 스위스 연방법 덕분에 스위스 은행들은 부유층들의 비밀계좌로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최근 잇단 금융법 개정으로 PB들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자금세탁규제 강화로 범죄행위로 번 돈임을 알고도 예금을 받아주면 징역까지 살 수 있게 되자 PB 수는 최근 10년 동안 3% 가량 줄어들었습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스위스는 변화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가상화폐와 ICO(Initial Coin Offering)를 미래의 먹거리로 삼았습니다.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는 지난 7월 가상화폐 자산 운용을 위한 PB 설립을 처음으로 승인했습니다. 스위스 팔콘 PB의 아서 베일로안 최고책임자(Global Head of product and service)는 가상화폐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자산 운용 계획을 승인 받은 후 “금융거래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자평했습니다.

스위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크립토밸리’까지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정보기술(IT) 집약지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스위스에는 디지털 금융 도시 ‘크립토밸리’가 있는 것입니다.

크립토밸리인 추크는 세계최초로 비트코인을 납세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도시입니다. 지난 2016년 7월 처음 실시된 납세 프로그램으로 인해 추크에 사는 스위스 시민들은 세금 중 200 스위스 프랑(한화 약 21만원)까지 비트코인으로 낼 수 있게 됐습니다.

가상화폐공개(ICO)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ICO를 적극 지원하자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추크(인구 12만명)에는 이미 130개국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다고 합니다.

스위스는 금융과 IT가 만난 ICO와 가상화폐를 적극 지원함으로서 잃어버린 금융 강국 타이틀을 되찾고자 합니다.

일본도 비트코인의 성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비트코인으로 하루를 살 수 있을 정도입니다. 국가가 보증하지 않는 가상화폐를 실물 경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신용카드도 아직 완전히 활성화 되지 않은 나라에서 가상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롭게 합니다.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남성 전용 캡슐호텔 ‘안심오야도(安心お宿)’나 도쿄 다이토구에 위치한 호스텔 ‘베드가즘(Bedgasm)’에서 1박을 합니다. 그리고 나가타쵸역 2분거리에 위치한 일본 가정요리 전문점인 ‘타이니 피스 키친(Tiny peace kitchen)’에서 브런치를 먹은 후 시로카네타카나와역 5분거리에 위치한 미용실 ‘르에코(L’echo)’에서 머리를 정리합니다.

오후에는 신주쿠구에 위치한 빅쿠로(ビックロ)에서 쇼핑을 합니다. 빅쿠로는 전자제품점 빅카메라와 패스트패션 브랜드 유니클로가 합쳐진 매장을 말합니다. 쇼핑을 마친 후에는 근처 회전초밥집인 ‘긴자누마즈코(銀座沼津港)’에서 스시를 먹습니다.

이 모든 일을 비트코인으로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이동수단, 즉 택시나 지하철, 버스 등은 비트코인으로 아직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수료 또한 아직까지는 매우 높은 편이어서 부담이 됩니다.

실제로 매장 내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결제 단말기에 뜨는 QR코드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읽은 후, 자신의 화면에서 결제 내역을 확인하고 결제하면 됩니다. 일본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비트플라이어(bitFlyer)’에 계좌만 있다면 사용 가능합니다.

일본은 마운트곡스 사건 이후 비트코인과 가상화폐를 음지에서 양지로 꺼내놓은 듯합니다. 가상화폐의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이 국제간 또는 개인간 결제를 편리하게 하고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졌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디지털 이민을 받아 국력을 끌어 올리려는 나라도 있습니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반(反)이민 정서가 몰아치는 유럽의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이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이민은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이 내국인에 준하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전자 거주자 제도를 말합니다. 지난 2015년부터 지속되는 테러 위협으로 인해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받은 에스토니아는 고심 끝에 ‘디지털 이민’제도를 구상했고 결과는 대성공입니다. 에스토니아에는 현재 143개국에 약 2만7000여명의 가상 국민이 있습니다.

이들이 에스토니아에 디지털 이민을 신청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서입니다. 에스토니아는 유럽연합(EU)에 속한 국가로 에스토니아 가상 국민이 되면 5억명의 EU시장에 뛰어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디지털 이민을 위한 절차도 매우 간단합니다. 이름, 주소, 여권 사본 등을 인터넷을 통해 제출하고 수수료를 지불하면 끝입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약 1달간 심사를 하고 통과되면 IC칩이 들어간 국민 카드를 발급해 줍니다. 이 국민 카드만 있으면 에스토니아에서 은행계좌를 열고 사업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닛케이신문은 에스토니아에 전자 거주자의 회사가 4300개에 달한다며 디지털 공간의 활용으로 투자를 유도하고 경제를 활성화한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닛케이신문은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행동력과 힘이 기존의 질서와 틀을 깨고 있다고 말합니다. 급변하는 사회에 한국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개인적 견해로는 과거 영광에 묶여 변화에 무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혁신을 거듭한 끝에 선진국 반열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공대 교수들이 쓴 ‘축적의 시간’에 따르면 “가발과 오징어, 텅스텐을 수출하던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휴대폰, 심해저 시추선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나라로 탈바꿈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토록 자랑스럽던 한국이 어느새 혁신에서 조금씩 뒤처지는 것 같아 그저 속상하기만 할뿐입니다.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무조건 적인 규제는 고쳐져야 합니다. 변화에 선두가 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에 도태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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