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제주바다, 자연의 적막함과 묵상에 잠기다
2018.01.29 01:07
수정 : 2018.01.29 13:11기사원문
[제주=좌승훈기자] 세월이 유수(流水)라고 했던가. 어느새 1월의 끝자락, 시계추 같은 생활이 ‘원수’다. 그러고 보니 북적거림은 싫고, 이 맘 때 한적한 곳에서 차분하게 제주의 자연을 접한다면, 아마 겨울 제주바다가 제격인 것 같다. 지금 바다는 그냥 버려져 있듯 조용하다.
맹동(孟冬)의 한복판. 누군가에게 달갑지 않은 것이 다른 이에게는 고맙고 반가울 수 있다.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 겨울바다가 안겨온다. 길길이 날뛰는 겨울바다의 바람 속에 모처럼 자유를 만끽 한다.
바다는 겨울에 가야 제대로 보인다. 텅 빈 바다, 세찬 파도. 구멍 숭숭 뚫린 까만 돌에 파도가 쉼없이 밀려와 흰 포말로 부서진다. 흑백의 조화가 절묘하다. 바다는 사람들이 떠나버리고 나서야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닷물은 연중 이맘때가 가장 투명하다. 눈이 시리도록 바다를 본다. 삶에 지치고 찌들은 이들을 위무하는 영혼의 쉼터랄까? 그윽하다. 누구든 이 바다를 보노라면, 잠시나마 세상 욕심과 허황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바람의 채찍질이 할퀴고 간 하늘. ‘칼’바람이다. 한반도 최남단이라지만, 제 값을 하는 겨울이다.
항상 소음에 시달리던 내 귀에는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자연음이 낯설기만 하다. 철지난 바닷가, 그러나 실망할 것은 없다. ‘해변으로 가요’, 열정의 여름바다에서 느낄 수 없는 호젓함과 차분함이 있다.
한나절 바닷가를 거닌다면 갯내음에 푹 빠져 허파에 소금기를 가득 채울 수 있다. 고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장소로서 겨울바다만큼 좋은 곳은 없다.
겨울 바다의 정취는 자연의 적막함에 있다. 무엇보다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지난 계절의 찌꺼기가 씻겨 내려간 듯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묵상에 잠긴 백사장, 지그시 눈을 감는다. 지난 계절에 밀린 생각들, 이 바다에 다 풀어낸다. 덩달아 삶을 대하는 자세도 진지해진다.
겨울바다, 해넘이를 본다. 한껏 기울어진 햇살이 미련 없이 바다로 스며들며 황홀경을 연출한다.
바다는 겨울에 가야 제대로 보인다. 해안의 실루엣도 제대로다. 자유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한순간도 숨을 죽이지 못하고 들썩거리는 검은 수면. 억눌렸던 감정도 파도처럼 꿈틀꿈틀 일어선다. 두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곳, 오늘 그 바다는 넉넉했다.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