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무현. 바람이 분다-Ⅲ

      2018.07.07 07:00   수정 : 2018.07.07 11:40기사원문
#. 2009년 5월 29일. 광화문 일대와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엔 시민 100만명이 운집했다. 광장엔 노란 고깔모자가 넘실거렸다. 노란 풍선은 파도처럼 일렁였다.

대형 전광판에 그의 사진이 떠올랐다. 이어 2002년 대선 TV 광고를 위해 그가 불렀던 노래 '사랑으로'가 흘러 나왔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노 전 대통령 특유의 사투리 섞인 말투와 투박한 창법이 귀에 박혔다. 곳곳에서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외침이 들렸다. 파란만장했던 한 정치인의 마지막 모습이자 앞으로 펼쳐질 한국 정치사의 변곡점이 된 장면이었다.
전국에 차려진 노 전 대통령 분향소엔 500만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임기말 스스로를 '인기없는 대통령'이라고 말했던 그의 죽음은 한국 정치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됐다. 정치권에선 이 때를 기점으로 본격화한 그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19대 대선 '문재인 대세론' 형성과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친노'가 한국 정치 전면에 등장하게 된 출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 번째 이야기. 오래된 생각.
노 전 대통령이 사저를 나선 때는 2009년 5월 23일 새벽 5시 45분. 컴퓨터를 켜고 몇 차례 수정을 거친 뒤 14줄짜리 짧은 유서를 작성했다. 경호실에 인터폰을 걸어 "산책 갈 거다"라고 말한 뒤 경호원 1명과 집을 나서 봉화산으로 향했다. 오전 6시 40분 봉하마을 사저가 내려다 보이는 45m 높이 바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동행한 경호원을 정토원으로 심부름 보내고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날 오전 9시 30분 서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

훗날 그는 노 전 대통령 유서의 마지막 문장 '오래된 생각이다'를 언급하며 "그를 너무 외롭게 뒀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해 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애도했다.

경복궁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김 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아이처럼 울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 당시 보수층은 물론 그를 지지해준 진보층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한다'는 비판을 들었고 그의 말과 행동을 지적하는 의견도 많았다.

그의 정치적·정책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한미FTA, 이라크 파병, 대연정 제안, 행정수도 이전 등 그의 재임 중 실시된 여러 정치 행위와 정책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대조적으로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그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지역주의 타파, 원칙과 신뢰의 사회, 탈권위주의 시대, 지방분권 등 그가 주장했던 정치 목표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퇴임 후 고향에서 보여준 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노무현은 철저하게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노무현이 새로운 시대의 씨앗을 뿌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폐족'으로 묘사됐던 정치 계파로서의 '친노'가 다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1년 뒤 치뤄진 2010년 지방 선거에서 그의 최측근 '좌희정(안희정), 우광재(이광재)'가 각각 충남지사와 강원지사에 당선됐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은 대선 재수 끝에 대통령이 됐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선 노무현의 사람들이 경남, 울산, 인천에서 지방 권력교체를 이뤘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갖는 특유의 승부사 기질도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의 승부사 기질은 2002년 '16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빛을 발한다. 노 전 대통령이 처음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을 때 그의 당내 지지율은 2%로 '꼴찌'였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였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그때 노무현은 곁가지 중의 곁가지"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이 이렇다 할 계파 세력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새로운 정치 문화의 파도 위에 몸을 실었다.


'16부작 정치 드라마', 국민참여경선이 시작된 것이다.


juyong@fnnews.com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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