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건 프리처) vs. (핵소 고지)
2018.07.27 10:07
수정 : 2018.07.27 10:24기사원문
#2.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인 데스몬드 도스는 ‘모두가 싸우는 전쟁에서 나 혼자 도망칠 수 없다’며 의무병으로 자진 입대한다. 집총과 안식일훈련 거부 등으로 동료·상관과 심각한 마찰을 빚지만 군사법원에서 ‘무기 없이 참전’을 허락받아 오키나와 전투가 펼쳐지는 핵소 고지에 배속된다.
<머신건 프리처>와 <핵소 고지>는 거대한 폭력에 마주한 두 신자의 실제 이야기를 조명한다. 종교를 따르지만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절망,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정반대의 방법을 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두 인물의 정체성은 영화 포스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죽어가는 전우를 무기 없이 짊어진 도스, 총을 쥔 채 공포에 떠는 아이 앞에 선 샘이 그렇다.
하지만 두 영화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단적으로 로튼토마토 기준으로 <머신건 프리처>의 신선도가 28%에 불과했다면 <핵소 고지>는 86%로 고평가를 받았다. 상업적인 성과도 각각 약 11억원, 2000억원으로 극단적으로 갈린다.
<300>의 ‘레오니다스’ 제라드 버틀러가 샘을 연기했지만 살인→회개→절망→극복이란 심리변화가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 수단에서 고아원을 짓게 된 까닭을 단순히 신의 계시라는 말로 ‘퉁’친 감독의 역량도 아쉽다.
반면 도스 역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는 영화가 개봉된 해에 <사일런스>라는 종교 영화로 열연을 펼친 바 있다. 이 영화는 일본 ‘신자발견’을 소재로 가톨릭 신부의 신앙을 그렸다. <핵소 고지>에서 보여준 신념 가득한 연기는 <사일런스>를 통해 다진 경험의 결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무기 없는 위생병, 기관총을 든 전도사.. 폭력에 맞서는 상반된 선택
내전으로 인해 희생되는 아이들, 적의 총탄에 죽어가는 전우들. 끔찍한 전쟁 속에서 두 신자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샘은 소년병이 되는 아이들을 구하려 스스로 총을 들고 반군에 저항했고 도스는 무기 없이 밤새 전장을 누비며 동료들을 구출한다.
그렇다고 해서 샘과 도스 중 누가 더 고결하다곤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그들 모두 처절한 희생정신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사지 속에 스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르게 본다면 남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펼쳤던 고(故) 이태석 신부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 신부가 신앙을 펼친 장소는 <머신건 프리처>에 가깝지만 그 방법은 <핵소 고지>와 유사하다. 영화는 잔인한 장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핵소 고지>에선 수류탄에 맞아 신체가 절단되고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머신건 프리처>에서도 반군 지도자에 저항하다 입술이 도려진 여인, 지뢰로 인해 두 다리가 날아간 소년이 등장한다. 모두 샘과 도스가 맞서려는 폭력의 무자비함을 극대화한다.
다만 두 인물은 폭력 앞에서 신앙에 기대려고만 하지 않는다. 샘과 도스가 영웅적인 활약을 하게 된 계기는 종교지만 이를 가능케 한 원동력은 인간의 의지다.
도스가 군대에서 마찰을 일으킨 건 어릴 적 친형을 죽일 뻔하고,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향해 총을 겨눈 데 대한 충격 때문이다. 다시는 인명을 해치거나 총을 쥐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신념이 작용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샘 역시 아이들이 자신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고아원을 짓는다. 반군에 의해 건물이 불탔을 때도 신앙으로 극복하지만 결국 총을 들고 만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기 때문. 영화 실존인물인 샘 칠더스 역시 현실에서 “아이들이 고통 받고 죽어갈 때 나는 기도를 해야 하는가, 총을 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여기에 샘과 도스는 종교라는 울타리 밖에서 회의감에 빠지고 만다. 샘은 고아원 유지를 위해 재산을 처분하다 가족과 충돌한다. 수단의 상황에 무관심한 미국인들이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는 모습에 분노하고 계속되는 반군의 방해에 편집증적인 행동까지 보인다.
종국에는 살인에 무뎌지며 “하느님과 갈라선지 오래”라는 말까지 내뱉는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던 철학자 니체의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
<핵소 고지>에선 도스의 절망이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그는 영내 부조리까지 감수할 만큼 신앙을 지키려 한다. 그가 신에게 의문을 던진 건 단 한 번, 죽어가던 동료를 끝내 살리지 못하고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읊조리는 장면이다.
■인간을 통해 신념 회복.. 양심적 병역거부 두고 생각해 볼 영화들
두 주인공이 신념을 회복하는 과정은 신이 아니라 인간에 있다. 도스는 신의 음성 대신 포화 속에서 동료들의 절규를 듣고 전장으로 되돌아간다. 샘 역시 “증오로 마음이 가득 차게 두지 말아야 한다. 그건 악마가 승리한 것이며,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증오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소년의 말로 절망에서 벗어난다.
결과적으로 도스는 전쟁터에서 죽어가던 군인 75명을 살려내고, 샘은 납치돼 끌려가던 아이들을 수없이 구출한다.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이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최근 <핵소 고지>는 관련 예시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머신건 프리처>도 함께 감상하고 생각해볼만한 영화다.
폭력 앞에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 집총을 거부했지만 수많은 생명을 살린 도스. 종교인으로서 살인이 죄악인줄 알면서도 아이들을 보호하려 총을 든 샘. 신앙과 신념을 지키고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이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탓이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