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을 돌아보다 1 -캄보디아 출장 후기
2018.08.11 19:54
수정 : 2018.08.11 19:54기사원문
헬조선. 불만이 많았다. 대입은 어렵고, 취업은 더 어렵고, 취업해도 월급은 쥐꼬리. 인(in) 서울 대학을 나와 서울에 있는 직장에 다니지만 내 집 마련은 요원. '85년생 김철수'를 일렬로 새우면 나쁘지 않은 스펙일지 모른다.
하지만 2년 전 캄보디아에 출장을 다녀오고 '헬조선'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담기가 미안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본 캄보디아, 한국보다 경제 발전이 몇십년이 뒤쳐진 그들은 운동장의 트랙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모래와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를 고무신도 없이 걷고 있었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자기들이 밟고 올라간 사다리도 걷어차 버려 캄보디아에 사는 그들에게는 '한강의 기적'마저 불가능할 것이 뻔해 보였다.
2016년 여름, 출장으로 캄보디아에 갔다. 당시 금융부에서 국책은행을 담당했다. 출장 목적은 한국수출입은행이 정부 예산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현장을 취재하는 거였다. 당시 EDCF를 통해 캄보디아 현지에 건설한 댐과 수로 등의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한국은 지구상에 있는 국가 중 유일하게 EDCF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공한 케이스다. 한국 전쟁 종전 이후 우리나라는 캄보디아보다 가난했다고 한다. 2017년 기준 캄보디아의 1인당 명목 GDP는 1309달러, 한국은 약 2만9891달러다. 쉽게 말해 캄보디아는 우리보다 약 20배 정도 못산다. 눈으로 직접 보고, 현장에서 겪은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은 '20배'라는 숫자로 단순화하기에 미안할 정도였다.
캄보디아 북서부에 있는 몽콜보레이지역에 설치된 댐 현장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인근의 한 민가에 들렸다. 갑자기 스콜이 쏟아졌다. 상하수도 시설 등 전반적인 생활 인프라가 없어 그 집에서도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어른 두 명은 들어감 직한 커다란 항아리를 처마 밑에 두고 있었다. 녹슨 지붕에서 떨어진 빗물이 항아리로 떨어졌다. 아이의 엄마는 예닐곱 살 쯤으로 보이는 딸 아이에게 바가지로 항아리의 물을 떠 먹였다. 가장 밑바닥의 물이 몇 개월 전의 것인지 몇 년 전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반바지와 반팔 웃옷 사이로 보이는 여자 아이의 팔과 다리는 버짐과 부스럼으로 얼룩져 있었다.
상하수도 등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되는데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라는 질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한국 관계자가 말했다.
"여기서는 아이가 아프면 민간요법으로 (근육통이 있을 때 붙이는) 파스를 네모낳게 잘라 아픈 아이의 이마에 붙여 줍니다. 그래도 안 되면 병뚜껑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아이의 등을 피가 날 때까지 긁어요."
그러니까 약이나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대신 더 큰 고통으로 잠시 동안 아픈 아이를 달랜다는 거였다. 사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얘기를 듣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는 사람 수보다 넉넉히 준비해간 도시락을 아이의 엄마에게 줬다. 말은 안 통했지만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필자는 버짐과 부스럼이 있는 여자 아이에게 한국에서 준비해 간 색연필과 수첩을 건넸다. 아이는 자기 이름을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글은 아직 모르는 듯 했다. 캄보디아 시골의 아이들은 의무 교육을 받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음악과 체육 등 예체능은 그것을 가르칠 교사가 거의 없다.
"1970년 중반 킬링필드 당시 젊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 인구의 약 4분의 1, 특히 가장 활발하게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다수가 죽임을 당하면서 캄보디아의 인구 구성은 어린이와 고령층이 많은 모래시계형 구조에요."
과연 이들에게도 몇 십년 뒤에 ‘가난한 한 때’를 추억하는 일이 가능할까. 다음 일정을 위해 에어컨이 나오는 차로 오르려는데 집에서 기르는 개와 닭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에는 개 한 마리와 4~5마리의 닭이 있었는데 개와 닭은 며칠을 굶은 것인지 뼈가 앙상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