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등 4건 보물 지정
2018.10.30 09:39
수정 : 2018.10.30 09:39기사원문
보물 제2001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1949년 경주 황오동 52호분에서 출토된 귀걸이 한 쌍으로 외형상 주고리, 중간장식, 마감장식의 삼단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신라 시대 5~6세기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이 귀걸이는 접합 부위가 매우 세밀해 눈으로는 잘 확인되지 않을 만큼 세공 기술이 뛰어나고 작은 구슬 장식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보물 제2002호 '이익태 지영록'은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익태가 숙종 20년인 1694년년 7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래 1696년 9월까지 재임기간 중의 업무와 행적, 제주 관련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서문에 의하면 이익태는 제주목사를 역임하면서 알게 된 제주도의 열악한 생활상과 누적된 폐단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참고하기를 바라며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수록된 내용은 이익태가 제주목사로 부임하기까지의 여정, 재임기간 중의 공무수행, 제주도 부임시의 행적과 그 과정에서 지은 시·제문·기행문 등이며 특히 제주와 관련된 여러 기록물과 조선인을 포함한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의 표류에 관한 기록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 중 1687년 제주도민 김대황이 출항 후 파도에 휩쓸려 베트남에 이르렀다가 귀국한 여정을 기록한 '김대황표해일록'은 조선 시대 베트남 관련 기록으로 희소성이 있다.
보물 제2003호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7세기 전반기에 활발하게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 무염을 비롯해 총 5명의 조각승이 참여해 1649년에 완성한 불상이다.
높이 67cm의 단아한 규모에 머리에는 연꽃과 불꽃문양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썼으며 가사는 두벌 겹쳐 입은 모습에 상반신을 앞으로 구부렸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고 신체의 자연스러운 양감이 돋보인다.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져 역삼각형을 이루었으나 날렵하고 갸름하게 처리한 턱선, 높게 돌출된 코, 자비로운 인상에 실재감 있는 이목구비의 표현 등 1650년대를 전후로 아담하고 현실적인 조형미를 추구한 무염이 참여한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물 제2004호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광해군 14년인 1622년 광해군의 부인인 문성군부인 유씨가 왕족들과 친정 부모의 천도를 목적으로 발원해 왕실 원찰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한 11존 불상 중 하나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17세기 대표적 조각승 현진과 수연, 응원, 인균 등 당대 유명 조각승들이 합작해 만든 불상으로 조각승들의 제작 특징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작품이다.
한편 보물 제455호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는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와 더불어 신라 시대 장신구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작품으로 이번 명칭 변경은 보물 제455호가 1966년 일본에서 환수된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임에도 불구하고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로 인식되어 온 것에 대해 바로잡는 조치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