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음과 반음이 하나의 악보가 되듯, 음악으로 하나 된 이들
2018.11.01 17:07
수정 : 2018.11.01 17:46기사원문
누구나 한번은 서고 싶은 '꿈의 무대', 미국 뉴욕 카네기홀은 수많은 연주자들에게 그런 의미다. 그 꿈의 무대를 밟은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있다. 지난 9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 25명은 화려한 카네기홀 조명 아래서 음악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했음을 증명했다.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합니다"
지난 10월 22일 늦가을 저녁에 찾은 서울 송파구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연습장은 연주자들이 가득한 여느 연습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트하트재단의 한 층에 마련된 오케스트라 연습실은 첼로, 바이올린 등 현악기를 조율하는 소리, 가벼운 잡담과 웃음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안두현 지휘자(36.사진)는 "이 일을 맡은 후 많은 이들이 '힘들겠다'고 했지만, 첫날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재미있게 해오고 있다. 힘들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다. 일단 아이들이 생각보다 실력이 좋다. 집중력도 높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아르츠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양평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안 지휘자는 지난해 초부터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함께하고 있다. 안 지휘자는 이날 인터뷰 내내 "우리 단원들은 솔리스트로서도 비장애인 이상의 연주 실력을 갖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 2006년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장애인들이 무슨 악기 연주냐'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몇몇 공연장은 아예 이들을 무대에 세워주지도 않았다. 이들의 마음을 돌려세운 것은 결국 실력이었다.
안 지휘자는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이미 프로 연주자다. 발달장애를 가졌지만 음악을 전공하려는 재능 있는 아이들이 모였다. 선발도 음대 교수들의 오디션을 거쳐야 하고, 시험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면 단원이 부족해도 선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전문사(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단원도 있고, 솔리스트로 협연 무대에 선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깊기 때문일까. 창단 초반에는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저희 연주를 처음 듣는 이들이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가 마치 어린이 오케스트라처럼 동요나 가곡을 연주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쉬운 곡을 들을 것으로 생각하다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란다"고 크게 웃었다.
■"그들만의 언어…우리와 다를 뿐"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일단 소통의 문제다. 단 10분도 집중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세계가 분명한 발달장애 단원 20여명이 모여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내다니. 상상만으로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미국 카네기홀 무대를 밟기까지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상상 이상'이다. 연주자의 연습은 일상이다. 순간에 몰입해 폭발적인 기량을 선보여야 하는 음악인에게 연습량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여기에 몇 배를 곱해야 한다. 안 지휘자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좀 더 긴 연습기간, 좀 더 치열한 반복과 주의가 필요하다. 보통 쉬운 곡이라면 1~2주, 교향곡과 같은 대곡은 6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 수십 배의 노력과 연습을 한다"고 전했다.
또 하나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만의 특징이라면 부모의 역할이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연습실에서 단연 눈에 들어왔던 점은 연주하는 단원 옆에 바짝 당겨 앉은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보통 연습실은 연주자와 지휘자 등 공연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장소지만 여기만은 다르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에는 부모님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안 지휘자는 "사실 일주일에 두어번 만나는 오케스트라 연습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집에서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데 부모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이 집에서 연습하는 시간을 보면 거의 프로 연주자 수준이다. 매일 5~6시간을 매달려야 한다"고 했다. 안 지휘자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연습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첫 연습장에 섰을 때 어머니들이 다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부담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머니들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제 조언을 기억했다가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아이들이 연습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이 친구들도 대단하지만 어머니의 위대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창단 당시에는 자리에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해 서성이는 단원들에게 전담선생이 각각 붙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 단원들이 지금은 뉴욕 카네기홀 같은 큰 무대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마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안 지휘자는 "우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많다. 연주에서 오는 감동도 있겠지만, 아마도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을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런 공감이 우리만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사실 발달장애를 안고 있기에 모든 일상을 함께해야만 하는 부모의 중압감은 감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연습실에서 만난 대부분의 어머니는 지휘자 조언과 분석이 빼곡히 적힌 악보를 옆에 끼고 있었다. '3년차 신입 엄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한 단원의 어머니는 마치 수험생 노트 같은 악보를 보며 "악보 공부를 해야만 한다. 음악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아이와 함께하다 보니 우리도(부모도) 반쯤 연주자가 됐다"고 했다. "어려움이 많았겠다"는 기자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를 '힐링'이라고 답한 그는 "여기 오면서 아이가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됐다. 무엇보다 소통이 가능해지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사실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니 몸도 안좋았는데,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면서 아이도 밝아지고 무엇보다 희망이 생겼다"며 환하게 웃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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