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취약한 전통시장… 안전불감증 여전
2019.03.04 17:30
수정 : 2019.03.04 17:30기사원문
"소화기요? 물건 놓을 공간도 부족해서 캐비넷 안쪽에 넣어놨죠."
지난 3일 오후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씨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던 서울 남대문시장. 지하철 회현역 근처 수입상가 골목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는 상인 김모씨(46)는 "가게에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씨는 "남대문시장 건물이 오래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다닥다닥 붙어있어 솔직히 불난다 하면 걱정은 되지만 매일 장사도 해야 하고 소방 기준에 맞게 바꿀 여력도 없다"며 "평소에 조심하면 괜찮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이어 "소화기가 다들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물건 놓을 공간도 없다"면서 의류가 쌓인 매대 아래 미닫이 장을 열어보였다.
■길가에서 버젓이 불 쓰는 갈치골목
'건조하고 눈 없는 겨울'이었던 지난 1~2월에 이어 다가오는 봄은 평년보다 더 건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일부 전통시장은 화재에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4일 '2018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의 화재경계지구 121곳 중 88곳이 시장 지역이다. 전통시장 등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달 15일 발생한 청량리시장 화재의 경우 동대문구가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통해 소화기를 시장 건물 벽과 기둥마다 눈높이에 배치해 놓았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빨랐다.
화재가 발생했던 점포 인근에서 만난 상인 이모씨(48)는 "오래된 단층짜리 상점인데 점포 위에 다락방을 만들고 생활을 하다가 누전으로 불났다고 들었다"며 "그나마 근처에 소화기가 눈에 띄게 붙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바로 달려들어 불을 끌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옆 가게까지 더 크게 번지고 난리났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청량리전통시장 및 청량리종합시장, 청량리청과물시장, 청량리농수산물시장의 점포 378개의 소화기 보유대수는 349개로 약 92.3%의 보유율을 기록했다.
반면 서울의 전통시장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진 남대문시장은 총 5200개의 점포 중 소화기 보유대수가 700개로 약 13.5%의 보유율을 기록했다.
특히 불을 가장 많이 쓰는 갈치조림가게들이 모여있는 남대문시장 갈치골목에는 소화기를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20여개 점포가 늘어서 있는 군복골목의 경우 소화기는 2개짜리 한 세트만 복도 벽 하단에 붙어있었다. 그나마 건물 형태의 상가 내에는 소화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갈치골목의 상인 김모씨(63)는 "이 골목은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데 또 가게 안은 좁아서 조리시설을 밖에 놓고 있다"며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소화기까지) 놓으면 오가다 부딪혀 더 사고가 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상인회나 지자체에서 좀 더 구역 정비를 해주고 소화기를 더 비치해준다면 낫지 않을까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보이는 소화기'가 많아야
서울시 관계자는 "구도심에 위치한 전통시장의 경우 30~40년 된 노후 건물들로 조성돼 있는 경우가 많아서 당연히 화재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며 "그나마 현대화하면서 소화기가 비치된 곳은 화재 초기 대응이 상대적으로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시장별로 소화기 보유 수도 중요하지만 화재 발생 시 초동 대응이 실제 가능하려면 눈에 잘 띄고 손이 잘 닿을 수 있는 곳 비치된 '보이는 소화기'가 많아야 한다"며 "특히 노후화된 시장에서 화재 피해를 줄이고 골든타임을 연장하는 가장 큰 변수가 바로 이 '보이는 소화기'"라고 조언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