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범이 된 시골 청년, 브렌턴 태런트
2019.03.23 05:59
수정 : 2019.03.23 05:59기사원문
"나는 그저 평범한 28세의 백인이며 호주의 저소득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다"
지난 15일 뉴질랜드에서 50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하고 48명을 다치게 만든 브렌턴 태런트가 범행 직전 온라인에 올린 74쪽짜리 성명문에서 제대로 쓴 말은 사실상 이것밖에 없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은 태런트가 이처럼 끔찍한 범행을 벌일 줄 상상도 못했다며 그의 '세계여행'이 사람을 완전히 바꾸어놨다고 입을 모았다.
태런트의 풀네임은 브렌턴 해리슨 태런트로 1991년에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그래프턴에서 태어났다.
운동선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만큼 태런트 역시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그는 지역 헬스장에 자주 드나들었고 2008년에 그래프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대학을 포기하고 개인 트레이너 자격증을 땄다. 태런트는 2009년부터 그래프턴 시내 헬스장인 빅리버스쿼시앤드피트니스센터에 취직해 트레이너로 일했다. 헬스장을 운영하는 트레이시 그레이는 "태런트는 우리 헬스장에 어려서부터 자주 왔다"며 "동네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매우 열정적으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건 2010년에 49세였던 아버지가 석면으로 인한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부터였다. 어느 정도 유산을 물려받은 그는 갑작스레 세계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태런트는 훗날 성명에서 자신이 당시 암호화폐 투자를 통해 경비를 보탰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다음해인 2011년에 헬스장을 그만두고 훌쩍 호주를 떠났다.
이후 태런트의 여정은 불분명하다. 이달 사건 이후 각국의 조사에 따르면 우선 그는 지난 2016년 봄과 가을에 2차례나 터키를 방문했으며 그리스에도 머물렀다. 태런트는 같은해 말에 14세기에 오스만제국의 침략을 받았던 기독교 지역이자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이었던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등을 찾아다녔다. 이듬해 그는 1990년대 발칸 전쟁에서 무슬림(이슬람 신자)과 기독교도간의 맹렬한 인종청소가 벌어졌던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까지 둘러본 뒤 서유럽으로 이동해 프랑스와 포르투갈 등을 방문했다. 그는 성명에서 무슬림 난민 사태로 혼란했던 당시 서유럽을 돌아다니며 이민자에 대한 자신의 시선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적었다. 태런트의 여행지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와 북한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계를 떠돌던 그가 뉴질랜드에 들어온 때는 유럽 여행 이후로 추정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태런트는 2017년 8월에 뉴질랜드 남섬 남동부의 항구도시인 더니든에 도착해 침실 하나짜리 복층 아파트를 빌렸다. 집주인은 그가 집세를 한 번도 밀리지 않고 냈다고 기억했다. 태런트의 이웃들은 그의 집에서 어떤 소음도 듣지 못했고 누가 찾아오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수색결과 그는 집에 침대를 제외하고 어떤 가구도 놓지 않고 살았다. 또한 이웃들은 태런트가 운동에 집착했다며 매일같이 헬스장에 갔다고 기억했다. 그가 다니던 애니타임피트니스 건너편에는 5세 미만 무슬림 아동들을 위한 어린이집이 있었고 태런트는 매일같이 헬스장 창 밖의 무슬림 아이들을 노려봤다. 그는 성명에서 애초에 크라이스트처치가 아니라 더니든의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총격을 벌일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이사 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태런트는 처음으로 총기 허가증을 취득했다. 그는 같은해 12월에 뉴질랜드 최대 총기 판매점인 건시티 매장에서 첫 총을 샀고 2018년 3월까지 3자루를 더 샀다. 태런트는 총을 산 이후 인근 사격클럽을 출입하며 꾸준히 표적 연습을 했다. 그는 지난해 말에 다시 여행을 떠나 파키스탄과 불가리아, 헝가리까지 둘러보고 다시 호주로 이동해 친누나의 생일파티에 참석한 뒤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 15일, 남섬 최대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총 5자루를 들고 모스크 2곳을 돌며 무고한 무슬림들을 살해했다. 태런트는 이 과정을 17분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했다.
태런트가 오는 4월 5일 재판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까지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방법은 그가 범행 직전에 트위터에 올린 성명과 과거 페이스북 기록들뿐이다. 태런트는 성명에서 서구사회가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공격받고 있다며 자신이 테러범이 아니라 게릴라전을 벌인 군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1년 노르웨이 학살범 베링 브레이비크에게 영감을 받았다며, 뉴질랜드를 범행 장소로 고른 이유에 대해서는 지구 구석진 곳까지 무슬림의 침략이 퍼지고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태런트는 자신이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니지만 극우 단체들과 교류를 하긴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미국 등 영어권 국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으며 그가 적은 성명에도 인터넷 속어들이 등장했다. 태런트는 범행 직전 인기 유튜버인 퓨디파이를 언급하며 "퓨디파이를 구독해!"라고 외치기도 했다. 퓨디파이로 활동하는 펠릭스 셸베리는 즉각 이에 반발하며 테러리스트가 자신의 이름을 입에 올려 역겹다고 말했다.
평범한 시골 소년이었던 태런트가 여행 중에 어떤 경험을 겪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인터넷의 혐오·인종차별 콘텐츠가 그를 자극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가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는 재판이 좀 더 진행된 다음에나 드러날 전망이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