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광주와 4월의 세월호, 그리고 2019년의 대한민국

      2019.06.08 09:01   수정 : 2019.06.08 10:21기사원문

인터뷰를 하러 녹음실을 찾은 두 아버지의 가슴에는 두 개의 배지가 있었다. 세월호 추모 배지와 광주민주화운동 추모 배지였다.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 추모식에도 다녀왔다.



세월호 가족들의 눈에 비친 광주의 가족들은 어땠을까.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4·16 가족협의회)'의 장훈 운영위원장은 광주에서 슬픔과 분노,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느껴졌다"며 "그리고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들이 끔찍했다.
'이미 기획됐다', '암매장된 열사들의 시신을 화장하고 바다에 버렸다' 같은 것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광주와 세월호를 비교했다. 장훈 위원장은 "세월호 때도 똑같았다. 지금 나오는 국군기무사령부의 문건을 보라. 참사가 나고 한 달이 안 돼,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검토했다고 나오지 않았나. 그 당시 팽목항에서 가장 극렬하게 싸웠던 나는 죽을 뻔 했다"며 "우리도 광주분들과 똑같은 걸 당하고 똑같은 걸 느끼신 거다. 오히려 광주분들 덕분에 우리가 더 심한 걸 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장 위원장은 "1980년 광주에서는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거라면, 세월호 참사 때는 해야 할 일을 안 한 거다"라며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뭐냐.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게 국가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진상규명만 된다면 '정치적'이라는 비난도 감내할 것"

5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유가족을) 정치적인 관점으로 볼 때"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광배 4·16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부터 정치적인 쟁점으로 (여론이) 갈라졌기 때문에 정치적인 관점을 지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난 4월 박근혜·황교안·우병우 등 참사의 책임이 있는 관련자 명단을 공개하고 이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강하게 촉구했다. 제1야당의 현직 대표가 명단에 포함되자, 세월호는 더욱 정치쟁점화 됐다.

이에 대해 묻자, 장훈 위원장은 "명단을 발표하지 않으면 근처까지 가보지도 못할 것 같아서, '책임자들을 찍어놓고 가보기는 하자'라는 마음으로 발표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1기 특조위 때는 진상규명 중심으로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누가 책임자인지 지목조차 하지 못하고 끝났다. 조사권만 갖고는 조사도 제대로 못한다"며 "지금은 전략을 바꿨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123정장의 업무상 과실치사를 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어서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가야 한다"며 "사고가 났을 땐 한 명도 안 죽었다. 아이들이 '이러다 우리 죽는 거 아냐'라는 농담까지 주고 받았다. 그런데 그 뒤로 100분 동안 아무 조치도 이뤄지지 않아서 죽은 거다. 그런데도 책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장훈 위원장은 "올해가 되어서야 아이들이 '죽었다'라는 표현을 쓴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앞으로 가족들에게 정치적인 프레임이 씌워질지라도 진상규명의 길에서 한 걸음도 비켜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장훈 운영위원장은 "유가족들은 단순하다.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거나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진상규명의 길)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적이다. 민주당이나 현 여권 인사라 해도 (앞을) 막는다면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위원장은 "우리 가족들이 원하는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위해, 정치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기꺼이 받고 싶다. 그건 그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 아니냐"라며 "책임질 사람만 책임지면 된다. 책임 없는 사람은 자유롭다. 우리가 자유한국당을 공격한다고 하는데 특정 인물들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색안경을 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 모두가 피해자… 역사적 심판 감당할 수 있겠나"

지난 3월 광화문에 있던 세월호 천막이 철거됐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국민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데 아쉬움은 없냐'는 질문에, 아버지들은 "세월호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우문현답을 내놨다.

장훈 위원장은 "우리를 유가족, 피해자라고 하지만 난 다르게 본다"며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피해자다. 5000만 국민이, 우리 아이들이 수장 당하는 걸 직접 눈으로, 생중계로 봤다"고 말했다. 그 결과만을 보게 되는 다른 참사와 달리, 세월호 때는 모든 과정이 생중계 됐다. '전원이 구조됐다'는 오보가 전해지면서부터, 배에 있던 사람들이 살아있었을 때부터, 2014년 4월 16일부터 한 달 이상 동안 모든 과정을 국민들은 억지로 보게 됐다.

그는 "절대 잊을 수 없다. 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파서 그런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파서"라며 "사람들이 아프면 그 사안에 대해 피하게 된다. 많이 아프셔서 피한다고 생각하지, 일부러 피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답했다.

장 위원장은 모든 국민이 피해자라고 강조한다. "중요한 건, 전 국민이 피해자라는 거다. 이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전 국민이 봤기 때문에, 전 국민이 증인이다. 이 생각을 하고 있어야 문제가 풀린다"며 "국민들은 자신들이 봤기 때문에, (세월호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리라고 믿는다"고 단언했다. 이어 "(국민들이) '내가 봤다, 증인이네, 목격자네, 피해자네’라는 걸, 여태까지 숨겨왔다. 이 트라우마가 상당하다"라면서도 "그래도 이건 숨길 게 아니다. 정부도 단순히 우리한테 사과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장훈 위원장은 지난 4월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광화문 전야기억식 때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말을 이어갔다. "생존학생 중에 장예진이란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기록물이 30년 동안 봉인시켜놨지만, 우리(생존학생)에겐 긴 시간이 아니다. 30년이 지나면 숨겨진 이야기가 풀리는데, 그때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우리 부모들에게 30년은 긴 시간이지만, 이들에게 긴 시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통령 권한대행 시기에 세월호 관련 대통령기록물을 30년 동안 봉인시켜 놓은 바 있다.

그는 "97년생 전후를 '세월호 세대'라고 하더라. 세월호 기록물을 봉인한 건, 세월호 세대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죄는 가벼워지지 않고 무거워진다. 30년 후에, 세월호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법적인 심판이 아니라 역사적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차라리 지금 벌을 받고 책임을 지는 게 낫다. 그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3부에서 계속)

[이디스 워튼은 '빛을 퍼뜨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촛불이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촛불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매직스피커는 모든 촛불을 응원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그저 응원으로 그치지 않고 촛불이 태운 빛을 세상에 전하는 거울이고자 합니다. 작고 소중한 빛을 그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로부터 빛을 지켜내는 파수꾼의 마음을 퍼뜨릴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촛불들이 거센 바람 앞에 위태로운 밤을 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이 홀로 타버리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거울이 될 겁니다. 스피커가 될 겁니다.
부디 우리의 시도가 마법처럼 빛나기를!]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김성호의 매직스피커>에서 더 깊은 인터뷰를 만날 수 있습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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