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더빌트 가문
2019.06.18 17:19
수정 : 2019.06.18 17:19기사원문
19세기 후반 '철도왕'으로 불렸던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 네덜란드계 이민자 후예인 그는 '시간'을 팔아 '아메리칸 드림'을 일궜다. 뉴욕 맨해튼을 오가는 보트에 최초로 '정시운항' 개념을 도입하면서다. 수지타산을 맞추려고 손님이 차야 운항하는 관성을 깬 그의 역발상은 시간에 쫓기는 승객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았다. 철도로 사업을 확장한 그는 남부의 명문 밴더빌트대학을 설립한 자선가였다. 그의 사후 상속을 받은 큰아들 윌리엄은 재산을 두 배로 불렸다. 지난 2007년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은 밴더빌트를 록펠러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부자로 꼽았었다.
그러나 밴더빌트 가문의 번창은 거기까지였다. 코르넬리우스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 가문의 재산은 거의 바닥났다고 한다. 맨해튼에만 10채의 궁궐 같은 집을 짓는 등 후손들이 물려받은 재산을 물 쓰듯 쓰면서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연수 중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의 밴더빌트가 여름별장인 마블하우스에 들른 적이 있다. 베르사유궁전을 빼닮은 이 건물은 주정부가 관광상품으로 운용 중이다.
부잣집이 3대 가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밴더빌트가의 부침을 보면 미국 사회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땀 흘려 일구는 창업보다 상속받은 부를 수성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잡음과 누수가 생기기 쉬운 탓일 게다. 밴더빌트가의 5세대 글로리아도 유산 상속 때 골육상쟁을 겪었다. 아들 쿠퍼가 "인간의 진취성을 망친다"며 유산상속 거부를 선언한 배경이다. 그런 그가 인기 방송 토크쇼로 명성과 부를 쌓고 있다. 그가 캘빈클라인 청바지를 디자인한 어머니의 도전정신은 확실히 물려받은 것 같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