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환자 기본권 지킴이인가, 의사 권리 침해인가
2019.07.13 06:59
수정 : 2019.07.13 06:59기사원문
이처럼 CCTV는 경찰서나 검찰 조사실에도 의무적으로 설치된다. 혹시 모를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로 범죄용의자가 인권침해를 입을까 우려해, 법으로 강제해두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일반인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곳에는 CCTV의 존재가 더욱 필요하게 마련이다. 과거 수사 중 발생한 의문사 사례들이 이를 방증한다.
CCTV는 수사기관이 미연의 불법을 저지르는 걸 방지함으로써 피해자뿐 아니라 수사기관까지 도덕적 타락으로부터 보호하는 장비인 것이다.
■“수술실 CCTV 없다면 의료사고 못 밝혀”
경찰과 검찰 조사실에까지 CCTV가 설치된 오늘, 여전히 CCTV 설치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곳이 있다. 다름 아닌 병원 수술실이다. 놀랍게도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는 병원 수술실에는 CCTV가 없는 곳이 대다수다. CCTV 설치를 강제하는 법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다. 수술실에서 병원의 법 위반 혹은 과실로 문제가 발생해도 피해자는 병원 측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수많은 의료사고 관련 사건에서 보듯이 의료진의 증언이란 얻기는 어렵고 번복되긴 쉬운 것이다. 더욱이 녹취가 유일한 증거일 땐 재판정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기 일쑤다. 그러나 만약 CCTV가 있었다면?
스물다섯 취업준비생이던 故권대희씨는 남몰래 찾은 서울 ㅈ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권씨는 49일 간 연명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사인은 저산소성 뇌손상, 쉽게 말해 산소를 공급해야 할 혈액이 부족해 뇌가 기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수술 중 발생한 과다출혈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권씨의 어머니 이나금씨는 2016년 권씨의 사망 이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늘까지 길고 긴 싸움을 벌여왔다. 병원 관계자의 증언을 녹취하고 발 빠르게 의무기록지도 확보했지만 수술실에 설치돼 있던 CCTV가 없었다면 싸움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다. 이씨는 수술실 CCTV와 다른 기록을 대조해 아들 권씨를 수술해야 할 의사가 수술 중간에 자리를 비웠으며, 확인되지 않은 일명 ‘유령의사’가 권씨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까지 동시에 수술했고, 과다출혈로 위험상태에 놓인 권씨가 상당시간 동안 방치됐다는 사실 등을 파악했다.
그 결과 권씨 유족은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민사1심에서 ㅈ성형외과의 과실비율이 80%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경찰이 기소혐의로 사건을 송치한 뒤에도 8개월여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검찰도 최근 수사를 재개했다.
이씨는 병원에 책임을 묻는 것,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겨울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일원으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의료사고에도 국회가 외면해온 수술실 CCTV 설치의 입법을 이끌어내겠다는 게 이씨의 목표다. 권씨의 이름을 따 일명 '권대희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수많은 논란 끝에 지난 5월 21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태다.
■의료계 반대 입장, 설득력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 아닌 안 의원이 대표자로 법 발의를 했을 만큼 수술실 CCTV 설치는 민감한 문제다. 의료계 단체 대부분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발의에 동참한 의원은 제 지역구 의료단체와 불편한 관계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난 5월 14일 안 의원 등 9명이 해당 법안을 처음 발의했으나 접수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동료의원 4명이 발의를 철회하는 촌극을 빚은 것도 이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철회한 의원은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동섭·주승용 바른미래당 의원,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으로 각기 다른 이유를 들며 철회결정을 유지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수술실 CCTV에 반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CCTV가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진료 위축과 방어진료로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피해를 주며, 영상이 유출되면 의사와 환자에게 프라이버시 침해가 발생해 불신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집 교사가 아동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논란이 된 사건 상당수도 CCTV가 문제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 지난 2015년 어린이집 내 CCTV 설치가 의무화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유독 병원 수술실만 CCTV로부터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한편, 국회 파행으로 계류돼 있던 수술실 CCTV 설치법은 12일 국회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에 회부돼 15일과 16일 양일간 심의를 앞두고 있다. 해당 법안이 보건복지위를 통과하면 법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본회의 의결을 통과하면 법률로써 확정돼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된다.
앞서 의료계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범죄의료인 면허규제’ ‘음주진료 방지’ 등의 법안이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된 가운데 해당 법안의 통과여부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그럼 이쯤에서 묻겠습니다. 당신은 수술실 CCTV 설치에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팟캐스트 <김성호의 블랙리스트>, 인터뷰 프로젝트 <김성호의 매직스피커>에서 이나금 어머니와 함께 한 더 깊은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