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노아도 취해 잠들었다죠 그윽한 포도향에

      2019.09.20 03:59   수정 : 2019.09.20 03:59기사원문
"형님, 아우님! 어서 와 보세요. 하하하.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자고 있어요."

성경 속 창세기에서는 노아와 그의 세 아들, 그리고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대홍수를 겪은 후 땅에 정착한 첫 해, 포도를 수확해 만든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상태로 잠들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둘째 아들인 함이 아버지의 취한 모습을 보고 마치 구경거리가 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첫째 아들 샘과 셋째 아들 야벳은 겉옷을 가져다가 자신들의 어깨에 걸친 다음, 뒷걸음질로 다가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줬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들의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다.
" 술에서 깬 노아가 자초지종을 알고 둘째 아들 함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실제로 함의 자손인 아프리카인들은 유대인들이 가나안을 정복했을때 노예로 살았으며 그리스, 마케도니아, 로마 등 고대 국가에서도 노예 계층으로 존재했습니다. 또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유럽인의 삼각무역으로 인해 노예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와인은 이처럼 성경의 창세기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가 대홍수를 겪은 후 터키 남부의 아라랏산에 정착해 땅에 처음 심은 게 바로 포도나무였습니다. 아라랏산은 터키 동부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아르메니아 고원지대로 높은 봉우리는 해발 5000m가 넘습니다. 여기에서 발원한 물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만들게 되며 이곳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시작됩니다.


아라랏산이 있는 아르메니아 고원 북쪽에는 조지아가 위치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산지입니다. 와인의 역사가 8500년에 달하는 조지아에서는 와인을 '그비노(Gvino)'라 고 부릅니다. 와인(Wine)의 어원입니다. 이게 이탈리아로 넘어와서 '비노(Vino)'로, 프랑스에서는 뱅(Vin)으로, 영국에서 와인(Wine)으로 불리게 됩니다.

조지아 와인은 '사페라비(Saperavi)'라는 품종을 이용해 항아리처럼 생긴 '크베브리(Qvevri)'에서 발효와 숙성을 진행합니다. 아직도 고대의 제조 방식 그대로를 따라서 만듭니다. 조지아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시원한 아열대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포도 생육에 최적화 된 기후로 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포도의 당분과 타닌을 높여주고 밤에는 해발 5000m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와인의 산도를 올려줘 아주 뛰어난 와인을 선물합니다.

■함무라비 법전 "술버릇 나쁜자에 와인 팔지 말라"

이처럼 방주에서 내린 노아를 취하게 만든 와인은 8000년이 넘게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아왔습니다. 그리스 북방에서는 기원전 4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포도씨가 발견되기도 했고, 기원전 2500년 전에 그려진 이집트 벽화에서는 와인을 제조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또 기원전 1700년경 만들어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술버릇이 나쁜 자에게는 와인을 팔지 말라'는 규정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만큼 이 당시에도 사람들이 와인을 많이 마시고 심지어는 주정뱅이까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고대에는 와인을 그냥 마시면 주정꾼이나 야만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귀족들은 와인에 물을 섞어 마셨습니다. 와인과 물의 비율은 1대3 정도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진하게 먹어도 비율이 1대2을 넘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친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하나의 주제를 정해 토론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쇼파처럼 생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한 손에는 와인잔을 들고 각자의 생각을 쏟아내며 때로는 학문적 소양과 문화적 소양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함께 마시다'라는 뜻을 가진 '심포지움(Symposium)'입니다. 오늘날에는 좌담회, 토론회의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는 술이 곁들여진 일종의 와인 파티였습니다. 참석자들은 시종들이 와인이 들어있는 단지를 들고 다니며 손님들에게 와인을 따라주면 지체없이 그 잔을 비워야 했다고 합니다. 심포지움에는 와인과 함께 무희와 악사들이 등장해 공연을 벌였는데 취기가 오른 참석자들은 직접 시낭송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술독에 빠진 수도사들.. 하루에 와인 8리터씩 마셔

와인은 가톨릭 문명과 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가톨릭에서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다. 이 때문에 와인은 가톨릭 성찬의식에 반드시 필요한 첫번째 물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수도원 주변에는 포도밭이 위치하고 수도원 안에는 와인을 만드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제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수도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도사들은 늘 와인에 취해 있었습니다. 수도원은 와인을 성찬미사를 위해 만들었지만 수도사들도 엄청난 양의 와인을 소비했습니다. 와인이 일상 음료로 쓰이다보니 수도사 한 명이 마시는 와인의 양이 하루 평균 8리터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와인병의 용량이 750ml이니 지금으로 따지면 매일 10병 정도의 와인을 마신 것이죠. 또 가톨릭 종교회의가 있는 날이면 그날은 엄청난 와인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세때의 그림을 보면 수도사들이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거나 팔로 턱을 괴고 앉아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사들은 부지런한 농부이자 뛰어난 와인메이커였으며 탁월한 미각을 가진 소믈리에였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암흑같은 중세시대에서도 와인산업은 급속하게 발전했습니다. 클뤼니 수도원으로 대표되는 베네딕토파와 시토수도원을 창설한 시스테르시안파가 오늘날의 와인산업을 만들었다고 봐도 됩니다.


▶다음 편은 '와인산업의 혁명적 사건들'이 이어집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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