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도피땐 멈추는 공소시효 다른 사건 수감땐 그대로 흘러

      2019.10.14 17:41   수정 : 2019.10.14 21:49기사원문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이춘재가 지목됐지만, 수감 중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어 공분을 사고 있다. 경찰이 이른바 '개구리소년 사건' 등 장기 미제 사건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지만, 유력 용의자가 이춘재와 같은 수감자인 경우 처벌할 수 없어 국민의 법 감정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죄를 지어 수감 중이기 때문에, 새로 드러난 범죄에 대해서도 처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해외도피의 경우 공소시효가 중단된다는 점을 들어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도피, 공소시효 멈춰"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관계자는 14일 '수감자에 대한 공소시효 중단을 검토 중이냐'는 질문에 "일단 관련 논의는 없는 상황"이라며 "관련법이 바뀌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지난 2015년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애고 이를 예전 범죄에도 소급 적용하기로 했지만, 2015년 이전 시효가 만료된 범죄는 여전히 처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 장기 미제 사건인 '개구리소년 사건'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이형호군 유괴 사건'도 지난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돼 진범을 잡더라도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지목을 계기로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력 용의자가 이춘재와 같이 수감 중이라면 처벌은 불가능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수감자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가 합당한가에 대한 의견도 제기된다. 경찰 한 고위관계자는 "해외도피는 공소시효가 중단되지만, 수감자는 공소시효가 지나가 버린다"며 불합리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논의는 결국 형사소송법 개정 등 입법을 통해서 해결돼야 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태완이법'이 잔혹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법제화에 성공한 만큼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관련 입법이 활성화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입법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공소시효에 대한) 기산점을 다시 잡기는 어렵다"며 "여론을 타서 관련법 발의를 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입법 발의 필요"vs.'신중해야'

DNA(유전자) 검출 시 공소시효가 연장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을 강력범죄에 확대적용하는 방법도 입법 시 참고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에는 강간죄에 대해 '디엔에이(DNA) 증거 등 그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때에는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국민 법 감정을 고려하면 살인자를 그냥 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특히 4대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고 배심원제를 강화하는 등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법적 안정성을 고려했을 때 공소시효 해제 문제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소시효 해지를 소급적용해 새로운 용의자가 발생할 경우 기존 사건 피의자가 재심을 신청하는 사례가 급증해 사법적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 도피자와 수감자에 대한 공소시효 적용 여부는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경우) 범인을 몰랐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며 "범인 신원이 밝혀진 뒤 도피하는 경우와 다르게, 누군지만 알면 바로 체포가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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